‘비누로 역사를 빚는 작가’ 신미경의 개인전이 지난 19일부터 한 달간 소격동 국제갤러리 본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비누로 만들어진 그리스 조각상을 비롯해 한국과 중국 스타일의 도자기 총 4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를 통해 작가의 다채로운 비누조각 세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트랜스레이션-그리스 아르카익 조각상>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 설치 장면, 2009, 비누,각 상의 크기 (왼쪽부터) 51 x 46.4 x 182[h]cm, 62.5 x 62.3 x 207.5[h]cm, 42.3 x 35 x 136[h]cm [제공:국제갤러리] |
신미경은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작업한다. 그녀는 2004년과 2007년 영국 대영박물관 전시에 초대작가로 선정되어 현대적 맥락으로 해석된 그리스-로마 조각 형태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2007년에는 한국관의 대표적인 유물인 달항아리를 대신해 비누로 된 달항아리를 전시해 조각계의 새로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 전시 기간 동안 국제갤러리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지난 8월부터 약 100일간 경기도 미술관에서 선보인 프로젝트 ‘트랜스레이션-그리스 아르카익 조각상(Translation- Greek Archaic Sculpture)’이다. 이 프로젝트는 비누로 제작된 세 개의 그리스 청년 나체 입상과 두 개의 비너스 조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스 청년의 비누 입상은 마치 수 천년 간 비·바람에 노출됐던 고대 그리스 조각처럼 약 100일간 자연 속에 그대로 풍화됐다. 비누를 이용해 수 천년의 시간을 3개월로 압축했을 뿐 그 과정은 그리스 조각의 그것과 똑같다.
<트랜스레이션-유리병 (Translation – Glass Bottle)>, 2009,
각 상의 크기 (왼쪽부터)17.5 x 17.2 x 31[h]cm, 33.2 x 23.8 x 44.2[h]cm, 25,7 x 25.3 x 34.7[h]cm, 23.7 x 23.4 x 51.3[h]cm, 20 x 19.5 x 24.3[h]cm, 25.4 x 22.7 x 60.8[h]cm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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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머지 4점의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 조각의 '진짜 원형'을 재현했다. 작가의 상상으로 채색됐지만, 원래의 그리스 조각상은 ‘흰색’이 아니라,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간에 의해 색이 지워져 로마 시대로 넘어올 때 하얀 단색 대리석으로 재현되었던 것을 당시 대중들이 그리스 시대부터 그랬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배치되어 있는 비누 비너스 상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관람객들이 손을 씻을 때 사용하여 조각상의 마모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작가의 배려다. 전시 기간이 끝날 때 즈음이면, 직접 손을 댄 관객에 의해 작품은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경기도미술관 화장실에 설치된 <트랜스레이션 – 비너스(Translation-Venus)>, 2009, 비누, 크기 45.5 x 42 x 67[h]cm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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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신미경의 작업은 결과물 자체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장소에 위치해 닳아지는 과정을 통해 장소성과 역사성을 가짐으로써 완성된다. 작가는 이러한 과거와 현재, 공간과 장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문화 현상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을 대하는 대중들 개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려 한다.
아주경제= 박성대 기자 asrada83@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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