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초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요란'스럽게 내놓은 각종 금융정책들이 조용히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 경제가 정부의 지원없이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되레 금융위기 당시의 비상조치들이 역작용을 보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거추장스러워진 상황이다.
23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을 통해 지난 7월 조성한 2조원 규모의 설비투자펀드의 집행 규모는 10월 말 현재 5552억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펀드를 조성할 때 예상했던 수요보다 시장의 실슈요가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펀드를 통해 산은과 기은이 입을 대출 손실 규모는 각각 416억원, 463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손실이 현실화되면 산은과 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은 각각 0.16%포인트, 0.08%포인트 하락한다.
결국 실물 투자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정책이 금융기관의 부실 규모만 키우게 된 셈이다.
한 민간 금융연구기관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설비투자 기준은 향후 경기에 대한 전망과 같은데, 정부가 실수요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했다"며 "시장의 니즈(Needs)가 크지 않은 정책을 내놨다가 오히려 금융기관의 부실 규모만 늘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가 올 초 내놓은 채권안정펀드와 자본확충펀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채권안정펀드는 시장이 금융기관의 시장성 상품을 대부분 소화함에 따라 집행률이 당초 계획의 4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자본확충펀드도 집행률이 20% 수준에 불과해, 2차 지원 계획은 아예 무산됐다,
40조원 규모로 설치되는 구조조정기금 역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및 해운사 선박 매입에 6조원 가량이 투입한 것 이외에는 집행 실적이 전무하다.
그 밖에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내놓은 사모투자펀드(PEF)도 제대로 된 실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은 PEF '1호 고객'으로 예상됐던 동부그룹도 산은 PEF가 기업가치를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산정하고 있다며 김준기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고 매각 작업을 통해 자체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전용식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의 비상 조치들이 위기 시기에는 시장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필요했을 수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정책적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정책적 '실패'를 어느 정도 인정한 모습이다.
정부는 이달 중으로 중소기업의 대출 보증을 축소하고 지급보증을 폐지하는 등의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일회성 조치들을 철회하는 '금융위기 비상조치 정상화 방안'을 발표한다.
전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등 아직 자금을 원하는 부문이 많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구조조정, 중기대출 만기연장 등을 지원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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