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리에 예산안 졸속 심사 불가피
기초생활 생계비 2조 등 발목…서민 피해
심의기간 확대, 예결위 상설화 등 보완 필요
여야가 4대강, 세종시 늪에 빠지면서, 올해도 새해예산안 처리가 법정시한(12월2일)은 물론 집권 여당이 일방적으로 정한 데드라인(12월9일)도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예산안을 볼모로 한 정쟁이 해마다 반복되면서 이제 예산 심의 관련 제도를 뜯어고쳐 예산안 처리 지연에 따른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에 대한 국회의 수정 비율은 -0.12%에 불과했다. 정부의 예산안이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국회의 예산 심사가 그만큼 부실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이같은 부실 심사의 피해가 고스란히 서민층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내년 예산의 중점 지원 대상는 단연 서민들이다. 내년 복지예산은 올해보다 8.6% 증액된 81조원 규모로 이중 기초생활 생계급여 예산이 2조4492억원을 차지한다. 예산안 처리가 지연될수록 기초생활급여ㆍ구직급여 등에 의존하는 저소득층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다.
대학교 등록금이 날로 치솟으면서 서민가계의 부담을 그나마 덜어줄 수 있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도 예산 없이는 시행이 불가능하다.
경기는 회복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문 일자리 창출도 문제다. 정부는 공공부분에서 직접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올해보다 2조7000억원 늘어난 3조5000억원을 예산으로 배정했다.
또 수도권에 저렴한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위해 확보한 8조8000억원도 발목이 잡혀있다.
이때문에 사회 각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제도적 보완을 통해 정치 논리에 빠진 예산 심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우선 예산 심의 기간을 현행 60일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미국 240일, 영국 120일, 독일 120일 등의 심의 기간과 비교해 보아도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관계자는 "통상 60일이라고 해도 여러 쟁점에 휩싸여 여야는 매년 연말에 예산안 처리에만 급급해왔다"며 "예결특위 활동한 20일을 넘게하는 데 심의 기간 60일은 너무 짧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 예결위를 상임위원회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2004년 이후 예결위의 실제 예산 심의 평균 일수는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다.
특히 예결위는 특별위원회이므로 겸직이 가능하고 1년 임기인 의원들의 교체율은 80%에 이른다. 이 때문에 예결위의 상설화를 통해 예ㆍ결산에 대한 국회의 연중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국회는 모든 기능면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 하에서 대통권 권한이 작동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야 한다"며 "예산안 심의기간 연장, 예결위 상설화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예산 편성과정에서부터 국회 심의과정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각 과정에서 찬반 의사를 표시하는 등 예산에 대한 감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일본은 올해 처음으로 '예산공개심의제'를 도입해 민간전문가 30여명이 모두 447건의 정부 주요사업에 대한 예산 심의를 벌이고 있다. 지난 16일까지 나흘간 204개 사업을 심의해 1조엔 넘게 예산을 깎았다. 이들의 예산 심의과정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다.
아주경제= 송정훈 기자 songhdd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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