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행복이 사라진 행복도시

"참 아름다운 도시에요. 저도 서울에 살지만 그렇게 멀지도 않아요. 한 바퀴 돌다보면 공기도 좋고, 아름다운 풍경도 많습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건설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연신 "한 번 내려오라"고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자기가 직접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평화로운 농촌마을이었던 세종시가 어느날부터인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연일 언론보도에서는 세종시에 대한 뉴스가 이어졌다. 한가롭던 총리실의 출입기자수도 2배로 늘었다.

"요즘에는 소설이 많이 나온다"는 기자들의 자조적인 목소리에도 세종시를 둘러싼 경쟁보도는 식을 줄 몰랐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세종시는 오늘은 녹색도시가 되고, 내일은 기업도시, 그 다음날은 교육과학도시가 된다.

국회는 국회대로 정치 공세로 바람잘 날이 없고, 정부는 정부대로 세종시 대안마련 작업과 여론전에 정신이 없다.
 
게다가 정부는 12월에 대안을 내놓겠다더니 불과 몇주만에 1월로 바뀌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나라가 너무 시끄러우니 얼른 대안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하루빨리 세종시 논란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세종시에 기업을 유치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을 때는 기업 관계자들도 하루종일 문의전화에 시달렸다.

한 관계자는 "추측성 보도가 너무 많다"며 답답함을 내비쳤다. 정부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기업들도 난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 싸움과 오락가락 정책을 바라보며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국민이다. 

"세종시도, 기업도시도 싫다"며 "고향에서만 살게 해달라"는 세종시 주민들의 하소연은 공허할 뿐이다.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는 장편 '눈뜬 자들의 도시'를 통해 민주주의의 약점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

국민의 뜻은 어디로 가는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아주경제= 이나연 기자 n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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