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DNA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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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2-1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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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지니어 CEO' 관례깨고 MJ 최측근 전진 배치
-  신임 이재성 사장 정몽준 대주주 최측근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
'엔지니어 왕국'으로 불리던 현대중공업이 그 동안의 관례를 깨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엔지니어 출신이 아닌 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최측근(재무 전문가)을 전진배치해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19일 한국 조선업의 산증인이자 대표적인 테크노CEO인 최길선 사장을 용퇴시키고 오병욱, 이재성(사진) 부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전격 선임했다.

형식상으로는 공동 사장이긴 하지만 현대중공업 안팎에서는 이 사장에게 좀 더 무게가 실리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사장이 그룹 안팎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대표(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의 최측근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사장은 지난 2006년 발생한 '시동생의 난'에서 정몽준 최고대표의 '입' 역할 담당하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왔다.

게다가 이 사장과 공동 취임한 오병욱 사장은 현재 등기이사에 등재돼 있지 않아 대표이사에 취임하지 못한 채 사장 직위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

따라서 내년 주주총회가 열릴 때까지는 이 사장이 중심이 돼 회사가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관계자들은 앞으로 현대중공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 사장에게 힘이 더욱 실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재성 사장은 현대선물 사장, 아산재단 사무총장 현대중공업 기획실장 등을 역임하며 그룹의 대표적인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

이런 그의 이력 때문에 그룹 안팎에서는 이 사장 발탁을 두고 파격적인 인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춘림·박영욱·김형벽·박재면·최수일 사장 등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초기 사장들을 제외하고는 줄곧 엔지니어 출신 CEO들이 회사를 이끌어 왔다.

현대중공업을 세계 1위 조선업체로 끌어올린 장본인들은 역시 엔지니어 출신 CEO였다. 초대 사장인 덴마트 오덴세 조선소 기술이사 출신인 쿨트 스코우(Kurt J.W. Schou)을 비롯해 김형벽 전 회장, 민계식 부회장, 최길선 사장, 유관홍 성동조선해양 명예회장 등이 그들이다.

김형벽 전 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초대 생산부장과 엔진·중장비 사장 등을 거쳐 지난 1998년 9대 CEO 자리에 올랐다. 또한 2001년부터 그룹을 이끌고 있는 민계식 부회장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해양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선박 전문가다.

최근 물러난 최길선 사장도 현장에서 40여년을 보낸 엔지니어 출신 CEO다. 세계적인 조선 경영인으로 불리는 유관홍 명예회장도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이 같은 전통을 깨고 이 사장이 재무통 출신으로 CEO 자리에 오르면서 그룹 무게 중심이 '기술의 현대중공업'에서 '관리의 현대중공업'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 동안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CEO의 성향에 따라 그룹 핵심가치가 변했다"며 "현대중공업의 이번 인사는 기술보다는 관리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재성 사장은 경제 이론과 실제를 두루 경험했다. 특히 일찍부터 환 헤지와 원자재 수급 대책 등을 세워 회사가 '사상 최고 실적' 행진을 이어가는 데 기여했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위기 때마다 탁월한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를 내세워 이를 극복해 왔다. 사상 최악의 시황이 예상되는 내년에 그 동안 엔지니어 출신이 CEO를 맡는다는 암묵적인 관례를 깬 '이재성 카드'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아주경제= 김병용 기자 ironman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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