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정 공식 인정, 감축 논의 불씨 살리는 등 성공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제시 실패
세계 191개국이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15)에서 밤샘 협상 끝에 지구의 기온 상승을 2℃ 이내로 제한하는 등의 ‘협정’을 공식 인정키로 함에 따라 ‘절반에 성공’에 머물렀다. 당초 각국의 합의가 정치적 선언에 그칠 것이란 예상보다는 일부 진전됐지만, 각국이 지켜야 할 온실가스 감축분에 대한 구속력 있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특히 사실상 미국, 중국 등 초강대국(G2)간 합의를 통해 협정이 마련됨으로써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전 회원국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유엔의 가치가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지구 온도상승 2℃ 이내 제한 등 성과로 꼽혀
당사국 총회 의장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회의 결과를 발표하며 미국의 주도로 완성된 코펜하겐 협정에 ‘유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협정이 비록 총회의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총회의 공식적인 합의문으로 인정, 법적 효력을 갖도록 해 협정의 내용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번 협정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중국과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참여해 완성했다. 지구의 기온 상승을 억제하자는 비전을 공유하고 합의를 이룬 점이 주요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협정에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제한 △선진국은 내년부터 3년간 300억 달러를 개도국에 긴급지원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씩 지원 △선진국은 내년 1월말까지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제시 △개도국은 내년 1월말까지 감축 계획 제출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감축 합의안은 내년 말까지 마련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 지구의 허파인 숲 보전 방안에 합의한 것도 나름의 성과로 꼽힌다. 숲을 비롯해 기후변화 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토탄 토양 및 습지와 같은 자연지형을 보전하는 개도국에 선진국이 보상해주는 방안에 의견 접근을 이뤄서다.
정부대표단 관계자는 “이번 총회가 기대와 달리 정치적 선언에 그쳤다는 지적이 많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을 환기시킨 점은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합의 실패
그러나 이번 협정은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확실하고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개도국들의 강한 반발을 사 끝내 총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법적 구속력도 확보치 못했다. 또 2020년부터 2050년가지의 범세계적인 온실가스 중·장기 감축 목표의 수준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해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5개국이 협정안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제시 시한을 내년 1월말까지 제시하도록 했으나 역시 구속력을 가지 않는다고 명시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결국 코펜하겐 총회의 가장 큰 목표였던 교통의정서 이후의 체제, 즉 2013년 이후의 선진국 감축 목표 제시 시한을 내년 1월까지 미루고 법적인 구속력 부여 시점도 내년 말 멕시코시티에서 열릴 차기총회로 미뤄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이 많다.
교토 의정서는 2008~2012년 선진국이 1990년에 비해 평균 5.2% 감축하도록 못박았었다.
그간 선진국들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수준 대비 16~23%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반면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이 1990년 기준으로 감축치를 약 40%로 늘려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맞서왔다.
최종적인 감축 목표가 정해진 다음에는 국가별로 배출량을 할당하는 절차가 이어지는데 이를 놓고서도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또 한차례 격론과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보 드 보어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협정을 제결하자는 희망을 이루는데 실패했고 이 같은 협정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기대를 충족시키는데도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한국, ‘녹색성장’ 얻고 개도국 감축등록부 합의 잃고
이번 총회에 대한 정부의 평가도 ‘절반의 성공’으로 규정하고 있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기후변화협약 의무감축국으로 편입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소득으로 볼 수 있다.일부 선진국은 그간 감축 비의무국가(Non-Annex 1)인 한국을 상대로 기후변화협약 의무감축국에 포함돼 선진국으로서 구속력 있는 감축 의무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은 지난 10년간(1990~2000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세계 11위, 1990~2005년 배출 증가율 9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여서 국제적으로 개도국의 지위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지만 결국 개도국 지위를 유지한 셈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필요한 온실가스 배출 여지를 확보함으로써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국제사회에서 개도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유리한 기반을 조성했다는 평가다.
녹색성장 정책을 국제적으로 전파해 많은 국가와 기구 대표들이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공감대를 넓힌 것도 또 다른 소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총회 기간 환경건전성그룹(EIG) 국가정상 대표 연설을 통해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글로벌 성장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한국이 선진·개도국간 가교 역할을 하려고 제안한 감축 비의무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나마 레지스트리(NAMA Registry:개도국 감축활동 등록부)’와 ‘탄소 크레디트’ 제도에 대한 실질적인 국제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자발적으로 제시한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문제와 함께 2013년 이후에 개도국에 대한 지원 자금의 일부를 떠맡아야 하는 상황도 예상돼 잃은 것도 많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아주경제= 송정훈 기자 songhddn@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