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베리아산 원유가 국제시장에 본격 출하되면서 그동안 중동산이 지배해온 아시아 원유시장에 판도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최근 부분 완공된 동시베리아·태평양(ESPO) 송유관을 통해 극동지역으로 운송되고 있는 'ESPO'원유는 일단 내년 1분기 중 하루 25만 배럴을 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국들로 수출할 예정이며 앞으로 수년 내 하루 60만 배럴로 수출량이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디젤유 비중이 크고 저유황 중(中)질유인 러시아산 원유는 고유황 성분의 중동산에 비해 품질이 뛰어나고 고유황을 처리해야 하는 아시아 정유사들의 부담을 덜어줄 뿐 아니라 수송면에서도 생산지에서 바로 송유관을 통해 선적지로 옮겨져 인접국들로 수출되기 때문에 먼 거리를 돌아와야 하는 중동산 등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이밖에 아시아 시장에 대한 러시아산 원유의 수출은 그동안 중동산에 주로 의존해온 지역 수입국들의 수입선 다변화 시책과도 부합되는 것이다.
지역 정유사들은 공급된 러시아산 원유의 질에 만족하고 있으며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증가할 경우 중동의 산유국들은 러시아산 원유의 품질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원유를 혼합해야 하는 등 기존의 대아시아 시장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에너지 컨설팅의 알 트로너 사장은 "(러시아산 원유의 수출은) 이곳 원유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게 될 것"이라면서 "예를 들어 현장에서 직접 퍼올려 운반된 원유와 지구를 반바퀴 돌아온 베네수엘라 원유가 어떻게 경쟁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결국 걸프 지역 산유국들로 하여금 기존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아시아 원유 가격을 낮추도록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아시아국들은 지난 2008년 말 이후 석유수출구기구(OPEC)산 원유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한편으로 국내산 저유황 원유의 생산 감소로 고전해왔다.
이는 러시아가 우랄지역 원유 등보다 값싼 원유를 증산하는데 도움이 됐다.
또 이는 새로운 에너지 시장을 확보하고 종종 가격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어온 유럽연합(EU)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러시아의 정책방향과도 부합됐다.
ESPO 송유관은 이같은 러시아의 대아시아 시장 진출 전략에 완벽한 수단을 제공해 주고 있으며 특히 2년 내로 중국과의 연결망이 완성될 경우 그 효과는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베리아산 ESPO유(油)는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코즈미노에 마련된 원유선적터미널로 운반된 후 아시아 시장에 면세로 수출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의 생산량 한도를 준수하면서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으로 등장한 러시아는 내년 1분기 중 코즈미노항을 통해 하루 25만 배럴을 수출할 계획이다.
ESPO의 초기 원유비중(API)은 34도 정도에 유황함유량은 0.6% 수준으로 우랄산 보다 가볍고 중동산 기준유인 오만산과 유사하다.
그러나 러시아 내 보다 많은 생산업자가 원유를 생산해 내면서 시베리아산 원유 질은 당분간 유동적이며 이로 인해 아시아 지역 정유사들로부터의 선호도가 제한적일 수 있다.
분석가들은 그러나 아시아 지역의 정유사들이 중동산 고유황 원유와 중간 추출물들을 처리하는 능력상의 제한 때문에 결국은 ESPO가 아시아 시장에 이상적인 원유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품질상의 우월함과 송유관을 이용한 운반상의 유리함, 그리고 아시아국들의 수입선 다변화 정책 등 여러 측면을 감안할 때 러시아산 원유가 아시아 원유 시장의 경기규칙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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