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치부심?)하던 금융당국의 '강정원 팔비틀기'가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주말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에 대한 비리가 포착됐다며 고강도 조사를 예고했다. 이로써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둘러싼 당국과 KB지주간 갈등은 2라운드에 돌입했다.
당국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뚝심'으로 KB지주 수장에 오른 강정원 회장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KB금융 회장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관치의 그림자'가 더 짙은 암운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에 대한 비리 혐의를 확보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내년 1월 예정된 종합검사를 앞두고 지난 16일부터 23일까지 실시한 사전검사를 통해 일부 사외이사가 KB지주 계열사와 거래관계를 맺거나 용역 업체 선정과정에 개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일부 사외이사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회사가 국민은행과 80억원 규모의 IT시스템 유지ㆍ보수 계약을 체결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또 다른 사외이사는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구축작업을 컨설팅업체가 권고한 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가 맡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이같은 사실이 이미 지난 2월 금융당국에 의해 포착됐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번 사전검사를 통해 이사회 녹취록을 입수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를 재확인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혐의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번에 다시 같은 문제를 들고 나온데다 필요하다면 계좌추적권까지 동원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 사전검사에 평상시 3배에 달하는 인력을 투입했다. 또 KB지주는 물론 국민은행 주요 간부의 개인 컴퓨터 10여대를 압수하는 고강도 조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회 사무국에서는 이사회 녹취록을 확보하기 위해 아예 캐비닛을 통째로 들고가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이미 KB금융에 대해 공공연한 차별을 하고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MB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미소금융재단 사업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7일 KB금융과 신한ㆍ우리금융이 미소금융재단 개소식을 열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우리금융 행사에 참석했고 김종창 금감원장은 신한금융 자리에 참석했다.
KB금융의 미소금융재단 개소식에는 김주현 금융위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당국은 장소가 대전이어서 금융수장들이 참석하기엔 거리가 멀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번달 출범하는 미소금융재단 11곳 중 10곳이 서울과 수도권에 편중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금융당국은 충청권에서 사업을 벌이는 KB금융의 행사에 비중을 높이는 것이 모양새가 더 좋았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이 예상보다 강하게 압박에 나서면서 강정원 회장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금감원은 내년 1월 종합검사에서 강 회장을 낙마시킬 수도 있는 '강한' 재료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노골적으로 반감을 나타내는 최고경영자가 과연 주주총회에서 환영을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KB금융의 사외이사들은 일단 당국의 검사에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지난 2월 알려진 것 이외에 추가적인 사실은 없는 만큼 당국의 검사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조담 KB금융 이사회 의장은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면서 "감독당국의 검사가 시행되면 금융기관은 수동적일 수 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관치 논란에 대해 조 의장은 "관치라고 보고 싶지는 않다"면서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를 아직 버리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강정원 회장의 향후 대응과 거취 문제에 대해 이사회에서 아직 특별한 논의는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조 의장은 "강 회장은 주주총회 등 예정된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면서 "강 회장의 거취와 관련된 특별한 대응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KB사태에 대한 금융권에 대한 반응은 혼란과 충격 그 자체다. KB금융의 강정원 회장 만들기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나타냈던 정부가 결국 끝을 보고 말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너무 나간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황영기 전 회장의 사임 이후 KB금융의 신임 회장의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야 말겠다는 것은 관치금융 논란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G20 의장국이 됐다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외치고 있는 정부의 행보와 멀어도 한참 먼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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