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의지와 연구원의 피땀, 성공신화 아로새겨
47조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로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원전 선진 6대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원전의 설계부터 가동까지 원스톱으로 수출하는 한국은 이제 신성장 시대의 나래를 활짝 펴게 됐다. 이 성공신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30년 전 전직 대통령의 불굴의 의지와 주당 80시간 넘게 일한 연구원들의 땀방울이 결합한 과거로부터의 후세에 대한 선물인 셈이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1971년 3월 경남 양산군 기장읍 고리에서 한국 최초의 원전 기공식이 열렸고 그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 이후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 연구원)을 처음 방문한 이래 수시로 헬기를 타고 연구소를 드나들었다.
석유 한방울도 나지 않는 척박한 영토에서 그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택했다. 그 당시에는 화력발전이나 제조업 구상에만 관심이 있던 때였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고도 경제성장으로 전력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두 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원전의 필요성은 한국 경제에는 숙명이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1978년 한전은 고리1호기 상업발전을 시작했다. 세계에서 21번째로 원전 보유국이 된 순간이다.
장인순 대덕클럽 회장(전 원자력연구소장)은 “고리 원전의 건설비가 당시 정부 한 해 예산의 4배나 됐다”며 “그러나 박 대통령은 강한 의지를 밀고 나갔고 전폭적인 지원으로 원자력의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매주 연구소에 들러 연구원들에게 당시 돈으로 100만∼200만원의 격려금을 내놓으며 격려했다고 한다.
UAE 초대 원자력 국제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정근모 한국전력 원자력 고문도 “기술도 없고 자금도 없고 전문가도 없었던 한국 원자력 시대 초기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의지와 집념에 감복한 연구원들은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연구에 매진했다고 정 고문은 덧붙였다.
과거의 땀과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96년 한국 표준형 원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 기술을 이용해 울진 원전 3호기를 우리 손으로 건설하는 신기원을 아로새겼다.
원자력은 녹색성장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다가왔다. 원전은 ㎾h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g으로 석탄(991g), 석유(782g)보다 현격한 장점이 있고 태양광 발전(57g)에 비교해도 온실가스 배출 문제에선 흠잡을 데가 없다.
정부 관계자는 “집권자의 의지와 전문가들의 헌신은 ‘한강의 기적’의 산 증거인 원전개발을 낳았다”며 “이제 한국인 특유의 독창성과 순발력으로 신성장동력으로써 원전의 발전을 완성시켜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아주경제= 송정훈 기자 songhdd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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