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상당수가 거리로 내몰리면서, 그 말은 저승사자만큼이나 불온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인원삭감은 그 수단일 뿐, 구조 조정 자체는 아니다. 구조 조정은 원래 어떤 기업이나 산업에서 불합리한 부분을 개편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불합리하다는 것은 경제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구조조정은 경쟁력이 없는 부분을 도태시킨다는 의미가 가장 강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구조 조정이라는 말은 본래의 뜻에 더욱 가깝게 쓰이고 있다. 구조 조정의 대상이 화이트 컬러에서 자영업자로 옮아갔고, 그 초점 또한 기업에서 산업 전반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외환 위기 당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과 그 후 배출된 청년 실업자들 상당수는 창업을 했다. 몸을 의탁할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턱없이 늘어난 자영업자들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자영업 전반의 매출이 격감했고, 이는 서민의 체감 경기를 나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여기에 바로 우리 기업과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 조정의 딜레마가 있다. 당초 구조 조정은 기업이나 산업이 처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한 인위적 노력이다. 물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구조 조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문제를 일거에 풀기 위해 구조 조정을 한다. 그러니까 기업과 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로도 구조 조정을 밥 먹듯 해야 한다면 그것은 역으로 구조 조정이 제 때에,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이 했던 구조 조정을 돌아보자. 불필요한 인력을 삭감했다기보다는 인력의 일정 부분을 막무가내로 줄였을 따름이다. 용의주도한 군살 제거라기보다는 무작정 굶기에 가까웠다.
정부가 했던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 조정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에 150조원이 넘는 공적 자금을 쏟아 부었다. 다른 한편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기업의 상품을 많이 사 쓰도록 국민들을 독려했다. 이 때문에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이 갖고 있던 빚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민들에게 이전됐을 따름이다. 진정한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먼 결과였다.
구조조정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미국 월가의 유머가 하나 있다. 전임 사장이 후임자에게 비방(秘方)이 적혀 있는 봉투 세 개를 넘겨주며, 회사가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열어보라고 했다. 신임 사장은 재임 중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순서대로 봉투들을 열어봤다. 첫 번째는 ‘전임자를 비난하라’라는 묘책이 담겨 있었다. 두 번째 봉투는 ‘구조 조정을 하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마지막 세 번째 봉투에 적힌 비방은 ‘똑같은 봉투 세 개를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즉 물러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말을 뒤집으면, 구조 조정은 주도하는 사람이 자신의 임기를 걸고 한 번에 과단성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 경영사에서 가장 빛나는 구조 조정 사례가 잭 웰치 회장의 GE사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해방 직후 광주에서 택시 한 대로 시작해 재계 서열 8위까지 오른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핵심계열사들이 워크아웃과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부디 박삼구 명예회장을 비롯한 금호아시아나의 경영진들이 부디 무작정 살빼기가 아닌 지혜롭고 과감한 결단으로 임직원들의 고통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위기를 벗어나길 바란다.
아주경제= 이형구 기자 scaler@ajnews.co.kr(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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