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라더스가 '리먼시스터스'였다면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까. 페미니스트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모험과 맨주먹 경쟁을 추구하는 남성성이 리먼의 몰락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격성향이 약하고 위계질서에 저항하며 협업과 네트워킹을 중시하는 여성성이 일류 기업들의 덕목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최근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2일자 최신호에서 남성과 여성에 내재된 차이만 강조하는 것은 기업 발전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찾기보다는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훨씬 더 득이 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석학으로 지난해 12월 타계한 폴 새뮤얼슨은 "여성은 돈 없는 남성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엔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함축돼 있다. 이들은 여성을 '특별대우'하는 사회 분위기를 경멸하며 남성과 같은 기준의 성공을 추구했다. 일에 집중하며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했다. 내재돼 있는 여성성을 포기하고 남성적인 강인함으로 무장했다. '철의 여인'이라고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최근 남성 중심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여성은 결코 잠재력을 표출해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리천장'만 뚫기보다 건물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업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에 침투해 있는 성차별 요소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또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한다. 이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덜 공격적이고 의견수렴력이 강하며 경쟁보다는 협업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주디 로스너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얼바인캠퍼스(UCI) 교수는 "여성은 변혁과 상호작용 측면에서 남성보다 뛰어난 경영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 내 여성의 위상을 연구한 '여성의 자리는 이사회에 있다(A Woman's Place is in the Boardroom)'의 공동 저자 페니나 톰슨과 제이시 그레이엄은 "여성은 남성보다 탁월한 수평적 사고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리먼브라더스가 몰락하면서 여성성의 가치는 더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여성에게 문턱이 높기로 유명한 미국 월가의 남성적인 문화가 재앙의 불씨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적인 위계질서를 뿌리 뽑고 무차별적인 공격성을 여성성으로 보완했더라면 리먼의 몰락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여성성이 기업 실적 향상에 큰 몫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최근 여성 기업인들이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필수적인 리더십 요소 9가지 가운데 5가지를 받아들이며 남성 기업인보다 더 나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니얼 피츠제럴드 톰슨로이터 부회장은 "여성은 남성과 차별되는 리더십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좋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며 "기업도 여성의 특성을 감안해 경영구조를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양성평등을 강조하기보다 두가지 언어를 구사하듯 '젠더 바이링구얼(gender bilingual)'로 거듭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만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기업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남성과 여성으로 갈리는 집단간의 차이보다 집단 구성원 사이의 차이가 훨씬 더 크다며 남성과 여성을 구별짓기 전에 개개인의 개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기업 발전에 더 유익하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성공한 여성 기업인은 여성성이 요구되는 업종보단 남성성이 강조되는 거친 업종에서 더 자주 눈에 띈다. 프랑스 원자력 기업 아레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자원개발업체 앵글로아메리칸, 세계적인 화학기업 듀폰을 이끌고 있는 이가 모두 여성이다. 영국 크랜필드경영스쿨은 여성의 승진이 가장 두드러진 업종으로 금융업과 운송업을 꼽았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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