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운 60년 ①) 한국 해운이 걸어온 길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책회사인 대한해운공사(한진해운의 전신)가 출범한 지 꼭 60년 되는 해이다.

한국 해운업은 지난 세월 동안 1980년대 암흑기, IMF사태 등 온갖 풍랑을 겪으면서도 일본·그리스·독일·중국·노르웨이에 이어 '해운 6대 강국'으로 올라섰다.

이에 아주경제신문은 '한국 해운 60년'이라는 주제로 한국 해운업의 지나온 발자취를 추억해보고, '해양 5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해양대학교는 1945년 11월 5일 개교한 뒤 고급 해운인력 양성을 양성, 한국 해운업 발전에 견인차 역학을 담당했다. 사진은 군산시절 재학생들이 선박운용학 수업들 듣는 모습(사진제공=한국해양대학교)

"해방 후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우리는 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해운강국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려왔습니다."

한국 해운업계의 산증인 박현규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구한말 개화기에 정부와 뜻있는 인사를 중심으로 근대적인 해운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고,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간신히 마련한 선박도 일본 선사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곧 나라 전체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한국 해운업 역시 꽃도 피우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한국 해운업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비로소 태동하기 시작했다. 태동기(1945~1960년) 고도성장기(1961~1980년) 조정기(1981~1995년) 등을 거쳐 2000년대에 한국 해운업은 마침내 글로벌 시대를 맞이했다.

◆태동기 : 1945-1960년

이 기간 동안 정부와 관계자들은 △선대 확보 △인력 양성기관 마련 △대한해운공사 설립 △한국 전쟁을 통한 각종 제도 마련으로 한국 해운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특히 한국해양대학교의 개교와 한국해운공사의 설립은 한국 해운업 발전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운업을 꽃 피우기 위해서는 전문교육을 받은 인력과 경영 노-하우(Know-how)가 필수적이 때문이다.

해방 당시 국내에는 일본의 고등상선학교와 진해고등해원양성소 등을 졸업한 100여명의 해기사만이 있었다. 이는 대형선박 한 척에 7~8명의 해기사가 승선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고작 10여척을 운항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마침내 1945년 11월 5일 진해고등상선학교(해양대의 전신)가 설립돼 그 이듬해인 1946년 1월 5일 제1기생의 입학식을 개최함으로써 고급인력 양성의 물꼬를 텄다. 이후 해양대가 배출한 인력들은 한국전쟁에서 필요한 전시 수송과 해군력 중강에 크게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이후의 한국 해운업의 고도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1949년 12월 30일 문을 연 대한해운공사 역시 해운업, 특히 국제항로를 무대로 해 영업활동을 펼치는 외항해운업에 필요한 인력과 경영전략을 제공해 우리나라 해운을 선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고도성장기 : 1961-1980년

해운업의 고도성장기는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하던 시기로, 이 기간 중 한국 해운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필요한 수송 수요를 충족하는 한편 세계 해운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전쟁 이후 승승장구하던 일본 해운선사들이 선원비로 주춤거릴 때, 우리 선원이 일본 선박에 승선하게 되면서 한국 해운은 비로소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와 함께 같은 기간 대한해운공사와 민간기업도 의욕적으로 선대 확보에 나섰고, 정부가 이를 적극 뒷받침해 한국 해운업은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주목받게 됐다.

아울러 대한해운공사가 민영화되면서 전문 인력들이 민간 해운선사에 진출, 해운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조정기와 글로벌 시대의 개막 : 1981~2006년

냉전체제가 해빙기에 들어서는 1980년대. 각국 정부는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완화 및 공정한 무역경쟁을 위한 지원제도의 폐지에 나섰다.

국내 해운업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관련 규제 및 지원제도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국내 해운선사들은 그 수가 급격하게 늘어남으로써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세계 각처의 조선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선복량을 소화할 수 있는 물동량은 없었다. 결국 해상운임은 폭락했고 국내외 선사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도산을 거듭했다.

10년 가까이 이어지던 장기불황도 1988년 전후해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해운업계는 정상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해운업은 구제완화, 자유화, 개방화를 통해 정부의 보호 우산에서 나와 무한경쟁시장을 구축했다. 또한 냉전체제의 종식으로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해운시장을 발견했다. 즉 북방해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해운업계의 '양대 산맥'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글로벌 선사로 우뚝 섰다. STX팬오션 역시 '글로벌 톱 1위'의 벌크선사로 도약하기 위해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한국 해운업은 찬란한 발전을 거듭해 온 한국 경제와 그 궤적이 같다. 비록 최근에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고전을 하고 있지만 올해에는 반드시 해운 5대 강국에 진입할 것"이라고며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아주경제= 김병용 기자 ironman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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