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포커스) 파산 잘해야 회생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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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1-1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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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몰락하면서 세계 경제가 위태로워지자 비난의 화살은 일제히 미국식 자본주의로 쏟아졌다. 기업인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한 경영이 수많은 미국인들을 거리로 내몰면서 미국식 경제체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하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기업 파산에 대한 체계적인 후속조치가 벼랑 끝에 몰린 미국 경제를 재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파산한 기업에 대해 회생의 기회를 주는 미국의 파산법은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기업의 다양한 재원이 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9일자 최신호에서 미국의 과도한 탐욕이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비난도 있지만 기업 회생을 전제로 한 미국식 파산 시스템은 불필요한 기업 대학살(corporate carnage)을 막고자 하는 다른 나라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파산법은 회생가능한 기업과 청산할 기업을 확실히 구분해 부실기업이 보유한 재원의 생산력이 가능한 빨리 시장에 재투입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미 파산법 챕터11(Chapter 11)이 법원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기업을 회생시키는 절차라면 챕터7은 부실기업의 조속한 청산을 도와 채권자의 손실을 줄이도록 돼 있다. 챕터11이 기업의 회생을 돕는다면 챕터7은 채권자의 손실을 줄여 경기회복에 이바지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파산절차는 파산법정이 주도하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지난해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 자동차 메이커 크라이슬러와 제너럴모터스(GM)는 40여일만에 파산보호 절차를 마무리하고 새 회사로 거듭났다.

또 미국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파산보호 신청자들에게 관대한 편이다. 실패한 기업인들에게 파산의 모든 책임을 돌리고 그들을 죄인 취급하기보다 운이 나빠 회생 기회가 필요한 이들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 파산법이 실패한 기업인들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것은 기업인들이 미국 특유의 개척자정신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실 파산은 기업인에게는 일종의 직업병과 같은 것으로 성공한 기업인은 그만큼 실패 경험도 많다. 따라서 기업 파산에 대한 미국사회의 관용은 창업뿐 아니라 실패한 기업가가 재창업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있다.

유연한 미국식 파산법은 강경한 중국이나 유럽, 중동지역의 관련 법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은 2002년 파산한 기업인의 재창업을 용이하게 하는 기업법(Enterprise Act)을 도입했다. 중국 역시 2007년 기업파산법을 1949년 제정한 이래 처음 개정해 부실기업이 좀 더 쉽게 구조조정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렇다고 미국 파산법을 모든 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후진국의 경우 법제가 비효율적이고 부채에 대한 잣대도 엄격해 한 번 망한 기업이 재기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이 파산 절차를 밟아 회생하는 경우는 일부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파산법에 따라 회생에 성공한 기업은 선진국의 경우 전체 파산 신청 기업의 59%인데 반해 동아시아(33%) 남미(22%) 중동(16%) 남아시아(13%) 등지에서는 회생 실적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파산절차를 마무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후진국이 더 길다. 선진국은 평균 1년 미만이면 파산절차가 완료되지만 남아시아의 경우 평균 4.5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자금난에 처한 개인이 느슨한 미국식 파산법을 남용할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에서 2006년 파산보호를 신청한 이들 가운데 기업인은 25%에 불과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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