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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장 충격을 느낀 대목은 미국 경제학의 대가들이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학 원류를 지탱해 왔던 본원적 전제 (fundamental premises)에 대해 회의(懷疑)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대경제학이 바탕으로 삼고 있는 세 개의 전제, 즉 인간은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행동 한다는 것, 인간의 행태는 도덕적 감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시장은 자율적으로 균형에 도달하고 결국은 안정적이라는 것 등이다.
지난 10년 동안 두 번에 걸친 엄청난 금융대란 (1997~98, 2008~09)을 겪은 세계경제는 시장의 작동기재가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 행위에 의해서 라기 보다는 탐욕에 바탕을 둔 지나친 투기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이다. 1997~98의 금융위기는 성장 일변도로 달려 온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과도한 부채경영에서 비롯됐고, 2008~09 위기는 투기적 금융수익에 눈이 먼 금융업자들이 말도 안 되는 파생상품들을 남발하여 시장 질서를 흔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시장적 상황에서 경제가 합리적으로 굴러 갈 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첫 번째 전제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하버드대의 로버트 실러교수, 콜럼비아대의 조셉 스티글릿츠교수가 대표적이다.
두 번째 전제, 인간은 기본적으로 도덕적 감정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도 무너져 버렸다는 것이다. 금융대란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엔론 사태도 미국 주요기업에 만연된 분식회계 때문이었다. 회계 상의 속임 수 뿐만이 아니라 최고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GM이 파산직전에 있는데도 그 회사의 최고 경영진은 상식을 뛰어넘는 연봉을 받고 있었다. 도덕이 지배하는 경제가 아니고 사기와 파렴치가 기승을 떨치는 경제로 전락 했다는 것이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도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미 연준 의장인 벤 버냉키도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 금리를 조정함으로써 주택가격 상승률을 조정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장의존형 정책은 이젠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즉, 앞으로는 DTI (부채-소득비율)나 LTV (대출-부동산가치비율) 등을 활용한 강력한 시장규제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는 시장에서 형성된 버블을 금리정책으로 잡는다는 것은 이젠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고 한탄하고 있다.
미국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반성론도 강하다. 엄청난 쌍둥이적자를 해외자본유입이나 국채의 대외판매로 충당해 왔던 미국의 경제정책이 이젠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다. 가계와 정부 공히 소비지출을 확대 해 왔던 수 십 년간의 타성을 방치 해 왔던 경제이기 때문에 이젠 대폭적인 수술이 불가피 한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저축증대나 신기술 개발을 통한 또 한 번의 도약이 요구되는데, 이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뉴욕대의 톰 사전트 교수나 하버드대의 로버트 배로교수가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반성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앞서 지적한 대로 금융업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해 있고 이를 적절히 제어하거나 감독하지 못한 시스템은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 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준(聯準)의 미온적, 대중적 규제제도로는 앞으로 미국금융은 물론 세계금융 질서의 정상화를 기대 할 수는 없으므로 강력한 특단의 감독시스템이 등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반성의 무드는 결코 2010년과 그 이후의 세계경제 및 미국경제의 전망을 밝게 할 수 없다. ‘블랙스완’의 저자 나씸 탈렙의 말대로 위험과 불확실성이 주역의 역할을 맡는 우울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 시대를 대표한다는 경제학의 대가들이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것을 알고 있는 한 새로운 이론과 질서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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