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부터 '권력투쟁'
노동운동을 통해 '인민노련' 창설
민주노동당 원내진출의 주역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1956년 부산 초량의 작은 단칸방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피난민 집안에서 자랐지만 그는 부모님의 지속적인 관심속에 자랐다.
1972년 고입재수생이었던 노 대표는 10월 '유신 선포'를 겪었다. 노 대표는 그날 불합리한 사회와 국가권력을 직면했다.
노 대표는 1973년 경기고에 입학하자마자 스터디 그룹을 결성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유신독재 반대'를 외치는 유인물을 만들었다.
대학입학 후에도 그는 권력대항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생운동을 이끌던 그는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이후 노동자로 변신하기 위해 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땄다. 그곳에서 배운 기술로 수많은 일터를 돌고 노동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현실을 경험했다.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그는 자신의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창설했다. 하지만 2년 뒤인 89년 그는 인민노련 활동으로 체포돼 92년까지 수감생활을 했다.
출소 후 그는 본격적인 진보정당 창설의 뜻을 품고 정치 활동에 매진한다. 수많은 고비 속에서 그는 진보정당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2000년 국민승리21과 민주노총이 결합한 민주노동당이 창당했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8.13%의 투표율을 얻으며 제 3야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노 대표 또한 17대 국회에 입성을 하며 진보정당의 첫 원내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을 통해 어느 정도의 목적을 이뤘지만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노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민주노동당을 나와 2008년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진보신당'의 창당으로 다시 원외로 나온 그는 여러번의 고비를 맞았다. 창당직후 18대 국회의원 총선에 도전했지만 정당 득표율 2.94%에 그쳤다. 공동 대표를 맡았던 심상정 대표와 노 대표도 지역구 선거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국민들과 함께했다. 점차 그들의 인지도는 높아졌고 2009년 4월 울산 북구 재보궐선거에서 조승수 진보신당 후보가 당선됐다. 창당 일년만에 원내진출은 그들에게 큰 성과였다.
그는 현재 이번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노동자들과 서민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아주경제= 팽재용 기자 paengme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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