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아메리카온라인(AOL)은 타임워너에 주도권을 내준 채 분사했다. 10년 전 혁신적인 만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결합했던 두 기업이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기업 합병 사례로 전락하게 된 원인은 뭘까.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당시 합병을 주도했던 제럴드 레빈 전 타임워너 회장과 스티븐 케이스 전 AOL 회장 등과 인터뷰를 갖고 닷컴버블 붕괴와 양사간 문화 차이가 미국 사상 최대 규모의 합병을 대실패로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레빈과 케이스가 처음 만난 건 1999년 가을 중국 베이징 텐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정부 건립 50주년 기념행사장.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한달여 뒤 뉴욕의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본격적으로 합병 논의를 벌이기 시작했다.
2000년 1월 10일 합병을 공식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이들의 회동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채 조용히 속전속절로 진행됐다. 합병 발표 직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에 대해 무려 20건에 달하는 기사를 타전했다.
케이스는 "발표 당시 우리는 최강의 인터넷 회사와 최고의 미디어 회사간 결합이 21세기를 선도하는 기업의 탄생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병 넉달 후인 2000년 5월부터 붕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닷컴버블이 터지기 시작했고 온라인광고시장은 위축됐으며 합병의 주요 근거였던 AOL의 수익전망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의 발달로 전화 접속 인터넷 최강자였던 AOL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지나치게 이질적인 두 회사의 문화 역시 통합 기업에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리처드 파슨스 전 타임워너 최고경영자(CEO)는 "합병 이후 타임워너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생활에 직면해야 했다"면서 "두 회사는 너무 다른 문화를 갖고 있었고 그 차이를 너무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신미디어와 구미디어 기업의 합병으로 어려움이 컸다"며 "두 회사를 융합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경영 주도권을 놓고 벌인 경쟁도 치열했다. 서로를 비방하는 언사도 쏟아져 나왔다.
AOL은 합병 회사 주식의 55%를 보유했기 때문에 합병 발표 당시에는 AOL이 통합 회사의 중심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제 이행과정에서는 AOL의 유능한 인재들이 타임워너 본사쪽으로 옮겨 가는 경우가 많아 AOL 측의 불만은 증폭됐다.
이 와중에 내부 제보자의 누설로 2002년 워싱턴포스트에 AOL의 광고수입 부풀리기 행태가 드러났다. 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 등의 조사로 합병 회사는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했고 타임워너 출신들이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케이스는 회사를 떠나야 했다.
'세기의 합병'으로 가장 큰 손실을 입은 이는 합병 회사의 최대 주주였던 테드 터너다. CNN 창업자인 그는 양사의 합병으로 전 재산의 80%를 날렸다.
터너는 "다시 아픈 상처를 파헤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은 베트남전쟁이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으로 흘려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합병은 미국에서 발생한 가장 큰 재앙 중 하나"라며 "나는 이로 인해 80억 달러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AOL은 이번주부터 대규모 감원을 단행해 유럽 지사 몇 곳을 폐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퇴직신청을 받아 인원을 3분의 1 가량 줄이려 했지만 실패한 데 따른 것이다. WSJ에 따르면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퇴직을 신청한 직원은 1100명이며 AOL은 1200명을 추가로 감원할 예정이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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