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시리즈] 유년시절 ‘호암’에게 도전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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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2-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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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723번지’. 호암 이병철이 태어난 생가다. 서울에서 4시간 가까이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고속도로와 국도를 오가며 어렵게 찾은 곳. 공용주차장에서 굽이진 골목길 200여m를 걸어가야 생가에 도착할 수 있다.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생가 전경. 대문채 너머로 우물과 사랑채가 보인다. 
이 오래된 기와집은 1851년(신해년, 철종 2년) 호암의 조부인 문산 이홍석 선생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기와와 벽 등은 여러 차례 개보수를 거쳤지만 그 뼈대만큼은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재하다.
 
이곳을 관리하는 이무형 호암생가 관리소장은 “호암 선생 타계 20주년을 맞아 2007년 11월19일부터 생가를 개방했다”며 “누적 관광객 수는 17만 5000여명에 달하고, 주로 단체관광객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의 설명이 시작되자마자 10여명 안팎의 단체관람객이 생가에 들어섰다. 관리 소장의 간단한 생가 소개가 끝나자마자 이들은 ‘거북바위’로 발길을 돌려 바위에 손을 얹고선 잠시 묵례를 했다.
 
일행 중 한명인 이옥선(51, 마산 산호동) 씨는 “화장품 영업을 하는 직장동료들과 함께 왔다”며 “부자 기운 받아가고 싶어 거북바위에 손을 올리고 영업이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부산에 유학온 중국 유학생 궈팅팅(郭廷廷, 35)씨는 학교 동료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는 “중국에서도 삼성은 유명한 기업”이라며 “산세가 좋고 운치가 있다. 삼성이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이 소장은 “호암 서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조부가 지은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며 “하지만 신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던 호암은 부모를 설득해 지수보통학교(현 지수초등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문물에 눈을 떴다”고 한다.
 
남해고속도로 지수IC를 빠져나와 국도를 타고 5분여 정도 더 달려 도착한 지수초등학교. 이 학교는 시골 읍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차선 왕복도로 중간에 위치해있다. 이곳에서 호암은 신학문에 대한 목마름을 어느 정도 해소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 식당 주인은 “이병철 회장 뿐 아니라 LG 구인회 창업주도 지수보통학교 동문”이라며 “두 회장들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효성 조홍제 회장과 GS그룹 허정구 회장도 동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교생 30명 남짓한 작은 초등학교에 불과하지만 한국 최고 기업들의 창업주를 길러낸 이 작은 학교 역시 풍수지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늦은 나이에 댕기를 자르고, 신학문에 눈을 뜬 호암은 지수보통학교에서 더 큰 세상으로 도전을 꿈꾼다. 서울 유학의 뜻을 품은 것. 결국 호암은 지수보통학교에서 짧은 배움을 마치고, 외가가 있는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행 열차가 하루에 한대만 정차하는 함안역. 소년 이병철은 이곳에서 새로운 새상으로 도전을
   시작했다.  
 
1922년 13세 소년인 호암은 함안역에서 서울행 열차를 탔다. 현재 함안역은 무궁화호만 종종 들리는 간이역이다. 서울행 열차는 하루에 한 대만이 정차한다. 상행선과 하행선 열차도 각각 여섯 대에 불과하다. 이렇듯 조그마한 지역에서 유년을 보낸 호암은 어떤 포부를 갖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을까?
 
이후 서울에서 그의 행적을 보면 조금이나마 그의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다. 수송보통학교에 입학한 그는 늦은 나이에 보통학교 수업을 받기에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결국 호암은 수송보통학교에서도 하위권이었던 성적에도 불구하고 중동중학교에서 1년 동안 2~3년 상당의 수업을 단기 속성하는 과정을 수료한다.
 
그리고 이후 다시 일본으로 넘어가 와세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지병으로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계속 학업을 위한 도전을 거듭한다.
 
청년시절 호암의 경영 활동은 도전과 실패, 좌절과 이를 이겨내는 재도전으로 이어진다. 천석꾼 집안의 자제로서 집안의 후원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그 인생역정이 상당 부분 다르다.
 
그리고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온 그이기 때문에 지금의 삼성, 그리고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난제는 산적해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만난을 무릅쓰고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프로젝트다. 내 나이 73세, 비록 인생의 만기(晩期)이지만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어렵더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할 때가 왔다.”(호암자전 중 반도체 산업 도전에 대한 호암의 발언)

아주경제= 특별취재팀(이형구·이하늘·감혜림 기자) scaler@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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