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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천/아키랩 건축사사무소 소장 |
오세훈 시장은 서울의 새 가치를 디자인에 찾으면서 '디자인 서울'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디자인 서울의 기본 이념은 하드시티에서 소프트시티로의 전환이다. 소프트시티의 핵심은 '비우는 디자인’이다. 그러나 오 시장의 '비우는 디자인'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서울의 공공 공간과 시설물은 여전 하드웨어적이고 외적인 포장의 연속이다. 무엇을 어떻게 비워야 하는 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 결여된 데 따른 것이다. 서울시의 비움에는 또 다른 채움이 있기에 안타깝다.
광장은 권위주의 시절 대표적인 전시행정 공간이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이 2002년 월드컵이나 촛불 시위를 통해 새로운 광장으로 변모한 예는 단적인 예다. 사실 공간은 점유하는 주체의 성격과 욕망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광화문 앞길은 일본강점기부터 당대의 이념과 사상이라는 욕망으로 채워져 왔다. 시대마다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광화문 광장은 변형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현재 광화문 광장에는 조선시대 광화문 길에 내재된 '자연스러움'을 찾아볼 수가 없다.
욕망은 성별, 세대, 개인과 집단 등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되고 표출된다. 광화문 광장의 경우 수많은 욕망을 하나로 묶기가 원천적으로 어려웠는지 모른다. 에드워드 렐프라고 하는 현상학적 인문지리학자는 인간답다는 것의 정의를, ‘의미로 가득 찬 공간에 산다는 점’이라고 제시한다. 랠프의 말처럼 광화문 광장은 의미로 가득찬 공간일까? 절대 아니다. 욕망 덩어리에 의한 기괴한 변형에 다름이 아니다. 오늘날의 매스커뮤니케이션, 대중문화, 대기업, 중앙 집중화된 정치권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시스템의 지나친 욕망은 공간에 내재된 수많은 의미를 제거해 나가고 있다.
더 이상 서울이 비(非)진정성의 짝퉁공간이나 성형의 천국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나치게 치장해서 오히려 의미를 가리기보다는 더 큰 가치가 있는, 있는 그대로의 진솔함과 진정성이 드러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무위의 교훈을 떠올려 본다. 혹시라도 비운다는 의도적 행위로 인해 작위 혹은 유위(有爲)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 안 될 것이다. 어떤 점에서 디자인은 결국 무엇을 하려고 함, 즉 작위 혹은 유위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조차도 작위의 어리석음, 무위에 대한 조심스런 겸손함을 견지하면서 표출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 중심적 사고보다 인간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의 회복과, 인간과 자연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의 회복일 것이다. 디자인은 앞장서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뒤에서 암묵적으로 녹아들 필요가 있다. 우리의 유위로 인해 내재한 의미를 제거해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광화문 앞길-광장이란 단어보다 광화문의 본래 의미에 충실한 것 같아 이 표현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도 시간의 주름이 패여 있는 의미 있는 삶의 공간으로 되돌아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디자인 서울의 가장 대표적 공간인 광화문 광장에 대한 논란은 서울시의 비우겠다는 입장 표명으로 일단락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논의의 시작일 뿐이다. 무엇을 비워야 할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비워진 광화문 본래의 모습, 회복된 본연의 모습은 무엇인지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단순히 일부 시설이나 이벤트성 행사를 없애는 것에 앞서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욕망으로 인해 덧칠해진 의미를 하나씩 제거하는 일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나친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은 채 또 다른 디자인과 욕망으로 다시 광화문 앞길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문제는 계속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혼돈만 시작될 것이다.
서울시가 가장 광화문스러운 모습을 찾았을 때 세계인은 광화문 광장을 찾을 것이다. 그 때가 광화문 광장이 세계인의 광장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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