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폭풍이 불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연간 900억 달러 규모의 징벌적 환수세를 발표한지 1주일 만에 보다 강화된 규제안을 꺼내들었다.
금융자본과 오바마의 '한판 승부'가 펼쳐질 태세다. 오바마가 제시한 규제안의 핵심은 은행의 자기매매 금지와 헤지펀드의 소유 또는 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월가를 경악케 한 것은 후자다. 월가를 대표하는 금융기관들은 지난 1980년대 이후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의 주체로 거듭났다.
그림자 금융이란 금융시장에서 규제를 받지 않는 비은행금융회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다.
그림자 금융을 주도한 것은 단연 헤지펀드. 월가 금융기관이 헤지펀드로부터 얻는 수익은 엄청나다.
JP모간의 헤지펀드 사업 규모만 40조원으로 추정된다. 월가 입장에서는 오바마가 '알짜' 사업을 빼앗아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월가는 규제를 피하기 위한 물밑작업에 들어갔다. 은행들은 의회와 이번주 열리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대대적인 로비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의 총체적인 반격에도 불구하고 '은행권 손보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은 은행이 말을 듣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을 지원 받은 22개 대형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7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위기 이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금융위기의 주범인 은행이 경제 살리기에는 '나 몰라라'하고 있는 것이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빨아들인 미국의 대형은행에 대한 국민정서 역시 악화일로다.
지난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씨티그룹을 비롯해 뱅크오브아메리카·골드만삭스·JP모건체이스·모건스탠리·웰스파고 등 6개 대형 은행이 배정한 임금 총액은 11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25조원이 넘는다.
실업률이 10%를 넘나드는 등 여전히 금융위기 여파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민들에게 월가의 돈잔치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더니, 최근 월가의 행보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규제의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 역시 25일 '은행 등 사외이사 모범규준'을 공개하면서 은행권 단속을 가속화하고 있다.
은행지주사 및 은행의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임기 제한을 강화하는 것이 모범규준의 골자다.
그러나 사외이사에게 경영에 대한 책임 부여가 결여된데다 금융기관 수뇌부의 물갈이에 이은 경제관료 출신의 '전관예우'를 위한 조치라는 비난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직 사임으로 불거진 관치금융 논란은 우리 금융권에서도 '핫이슈'다.
작금의 상황에서 아시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닥터 둠' 마크 파버의 말은 새겨둘 만하다.
그는 지난주 오바마 행정부의 은행 규제 강화 조치를 맹렬히 비난하며 이같이 말했다.
"나는 부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바마는 부시를 천재처럼 보이게 한다. 시장의 문제는 시장이 가장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정부가 은행을 규제하는 것은 재앙과도 같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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