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한국선진화포럼 편집위원,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
100년 전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경술국치가 있으며, 60년 전 호국의 정신을 불살랐던 6·25가 있다. 또 민주화의 열기를 내뿜었던 50년 전의 4·19민주혁명과 30년 전의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있다.
강산이 10번이나 변했을 법한 그 100년의 세월 동안 일어났던 이들 사건들에 대한 기억은 '국가의 기억'이며, 동시에 그 안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우리자신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그들을 고대 그리스인들의 표현대로 '망각의 강', 즉 '레테의 강'으로 떠나보내서는 안되고 그 기억을 되살려내는 '재현(再現)', 즉 '아남네시스'의 노력을 해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타고 있는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여러 고전은 국가나 정부를 '배(船)'에 비유해왔다. 정부를 영어로 'government'라고 하는데, 이 용어의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키잡이(steersman)를 뜻하는 '퀴벨네테스(kubernetes)'로부터 나왔다. 중세 라틴어에서 '키(rudder)'를 의미하는 '구베르나쿨룸(gubernacu1um)'도 'government'라는 단어의 뿌리를 이룬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국가공동체라는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기에 어디를 거쳐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우리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삶의 궤적과는 도저히 같을 수 없는 '우리 삶의 이야기', 즉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겪은 삶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금년에 새삼스럽게 해야 하는 것은 일찌기 『아라비안 나이트』에서처럼 세헤라자데가 주인공이 되어 천 날 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절박한 사연과 같다. 세헤라자데는 이야기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바치든지 해야 했다.
따라서 시대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그때 우리는...."으로 시작하는 한가한 회고용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과거를 돌이켜보는 절박한 성찰용 이야기이다.
독립운동과 건국의지, 호국정신과 민주화 열정으로 점철된 지난 100년
100년 전 나라의 국권을 일제에 의해 빼앗긴 경술국치를 기억하는 엄숙한 일이 고작 어설픈 친일인사명단이나 만들어 공표하는 수준 정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가해자는 악랄하기 짝이 없던 일제였고 피해자는 그 철권통치아래 신음하던 우리민족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민족을 괴롭혔던 가해자는 내버려두고 그 시대를 고통스럽게 살아간 피해자였던 아버지세대에게 돌을 던지는 어리석음을 자행해서야 어떻게 제대로 된 '기억의 재현'이라고 하겠는가?
오늘의 시점에서 경술국치의 화두는 '빼앗긴 하늘'과 '빼앗긴 땅'에서 어떻게 살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보다 그 하늘과 땅을 또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사회는 오랫동안 놀라운 호국정신의 구현이었던 6·25에 대해서도 쉬쉬하며 '잊혀진 전쟁'처럼 취급했다. 마치 서해교전에서 나라를 위해 산화한 호국전사들을 쉬쉬하며 보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젊은이들 가운데 태반이 6·25를 모른다. 그 뿐인가. 6·25이야기만 나오면 서로가 민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동족상잔의 비극 정도로 다룬다. 그러나 6·25에 대한 올바른 기억은 결코 그것이 다가 아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귀중한 목숨을 바친 호국 성전(聖戰)의 성격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존엄한 인간으로 살지 못하면 차라리 죽을지언정 노예처럼 살수 없음을 세계의 자유인들과 더불어 비장한 결의를 다진 것이 6·25가 아닌가.
4·19와 5·18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민주화의 상징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불가역(不可逆)' 의 가치임을 보여준다. 누구도 이 민주주의를 되돌릴 수 없음을 만방에 온몸으로 천명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건국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헌법 안에 명시적으로 밝혀놓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법조문이었을 뿐, 가슴 안에 살아있는 법조문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4·19와 5·18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는 우리의 가슴 안에 새겨진 법이 되었던 것이다.
독립운동과 건국의지 및 호국의 정신과 민주화의 열정으로 점철된 지난 100년간의 기억들은 대한민국이야말로 세우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임을 웅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의 뿌리가 바로 그들인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대한민국호(號)가 장애물이 없는 '블루오션'이 아니라, 암초가 산적해있는 '레드오션'을 항해해왔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레드오션'을 항해하는 와중에 만나는 각종 도전과 난관들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와 흡사했다.
히드라는 수십 개의 목을 가진 괴상한 뱀이다. 목 하나를 자르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머리가 생긴다. 우리가 마주했던 각종 난관들을 단칼로 벤 것은 아니지만 베고 또 베어 오늘에 이르렀다.
자유와 번영을 가져다 준 대한민국을 자축하자
자축해야 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그 기쁨을 공유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생일을 맞는 친구를 축하하며 선물을 보낸다. 생일선물을 받은 친구는 기뻐한다. 하지만 생일선물에는 기뻐하면서도 삶의 소중함에 감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생일선물에 기뻐한다면 그 삶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향유하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라는 열매에 대해서만 즐길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이 치열하게 살아온 삶 전체에 대해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람 있는 역사에 대한 기억과 그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시는 "정의가 패배한 나라",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 "친일파의 나라",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식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자들의 나라",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한 지도자들을 가진 나라",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 자유와 인권을 지킨 나라", "끈질긴 희생과 열기로 민주주의를 가꾸고자 혼신의 힘을 다한 나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 :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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