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값 대폭락이 시작됐다, 아직 아니다'로 다툰 모 방송 심야 토론 프로그램에서 건설단체 부설 연구소 연구원, 친 정부 교수, 재야 진보파 논객 등이 벌인 논란은 때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아파트 값의 대세 하락 이슈'는 지금이라도 온 사회가 껴안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
흔히 신문ㆍ방송이 치솟는 부동산 값을 뒤쫓아 간다는 평가가 많은 건 다름 아닌 미디어 회사들의 장삿속 때문이다. 건설경기가 고꾸라지기 전에 신문은 아파트 분양 광고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면서 그 보답처럼 특집기사와 곁다리 분석기사, 동향기사들을 실어주곤 했다. 방송 고발프로그램도 청약 과열 분위기를 과장하며 호들갑을 떨었을지언정 불합리한 가격 결정 구조에 대해서는 파헤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아파트시장은 늘 낙관적인 분위기로 술렁이는 것처럼 보였고 강남을 필두로 아파트 값이 다시 치솟을 거라는 믿음이 사람들 마음 속에 번져갔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고 한다. 자기 아파트 값이 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확고히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다. 도표나 사례, 정보도 그 믿음에 부합하는 것만 골라서 보이고 들린다고 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어서인지 아파트 값이 실제로 지난 몇 년 간 꾸준히 올랐다고 한다. 그것도 호가가 아니라 실거래가 지수 그래프상으로 입증됐다.
최근 2006년부터 시작된 실거래가 신고제도에 따라 수집된 데이터가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에 공개됐는데 2006년을 100으로 본 지수 그래프에서 2009년 9월 기준으로 서울 수도권이 큰 폭의 오름세를 나타냈고 지역에 따라 소폭 등락했다. 전반적으로 2008년 12월 큰 폭으로 하락했던 가격이 1년여만에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아파트 가격의 대폭락 현상은 없었다.
아파트 가격의 미래 예측은 간단치 않다. 호가는 물론 실거래가 데이터조차 신뢰도가 정확치 않은 데다 매매 가격 결정의 변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실거래가 신고제가 호가에 대한 불신 때문에 시행됐지만 다운 계약서의 횡행을 방지한다고 보장할 수 는 없다. 또 개인 사정상 싸게 나오는 급매물도 있지만 사고 싶은 사람이 안달하는 경우는 같은 물건도 훨씬 비싸게 팔릴 수 있다.
게다가 강남 등 버블세븐 지역을 비롯한 일부 아파트들의 매매는 '그들만의 리그 현상'으로 부자들 사이에서 돌고 돌아 가격의 고하(高下)에 구애되지 않는다. 몇천 만 원은 커녕 1~2억원 더 주고도 덥석덥석 사기 때문에 오르거나 내리거나 가격의 추세가 도무지 한 방향으로 꾸준하지 않다.
또한 서울 수도권 외곽 지역과 공급량이 많은 지방 신도시 아파트는 대출 상환 여력을 걱정한 주인들이 빨리 팔기 위해 싸게 내놓지만 거래량이 뚝 끊겨 사실상 하락세인 데도 지수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지역에서 천재일우(千載一遇)로 로열층 한 두 개가 고점에 팔려 실거래가 신고가 되면 순식간에 오르는 지역으로 오인될 수 있다. 전반적인 가격 하락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개업소들은 이런 정보 왜곡 현상을 이용해서 시세를 주도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아파트 가격은 신규 분양이 아니고서는 거의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결정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번 올라간 아파트 가격은 급매물이 쏟아질 정도의 금융공황 사태나 경제 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 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품론과 폭락론, 정치적 규제 여론이 기승할수록 아파트 값은 도리어 계속해서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폭락을 기대하는 심리가 팽배한 것은 그만큼 열망이 강하다는 것이고, 열망은 시장을 달굴 것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값의 폭락은 외려 아무도 아파트 가격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 갑자기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인 30~40대가 아파트살이에 질렸다며 아파트가 엣지 없는 콘크리트 상자일 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냉난방과 교통, 주차, 어린이 집, 할인마트 등 생활편의를 누리기 위해서 전세살이는 괜찮지만 굳이 내 집으로 평생 보유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회의하고 있다. 아파트 값 폭락이 이들의 마음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금융적,재테크적인 이유만으로는 오름새가 맞지만 더 이상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낡은 상품 아파트의 매력은 가격과 상관없이 추락하고 있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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