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불모지에서 세계 초일류그룹으로 발돋움한 삼성그룹의 눈부신 성장에 큰 자긍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 호암 이병철 전 회장과 이건희 전 회장은 일본 명문 사립 와세다대의 부자(父子) 동문이다. 그런 만큼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을 일궈낸 두 사람에 대한 와세다대의 자긍심은 각별해 보였다.
2002년부터 와세다대를 이끌고 있는 시라이 가쓰히코(白井克彦) 총장은 이병철·이건희 부자가 '세계 기업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썼다'고 극찬했다.
와세다대 출신으로 모교에서 전자공학·정보컴퓨터학 교수를 지낸 그는 일본에서 정보통신 분야 권위자로 손꼽힌다. 시라이 총장은 삼성전자 출범 초기부터 지난해 '매출 130조원-영업이익 10조원'을 돌파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척에서 지켜봤다.
시라이 가쓰히코 일본 와세다대 총장은 8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 총장실에서 가진 아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삼성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호암과 이건희 전 회장의 진취적인 도전정신과 빼어난 국제감각 덕분"이라고 말했다. |
시라이 총장은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철학과 기업가 정신으로 무에서 유를 창출해 낸 호암과 이건희 전 회장은 와세다대 후배들이 닮고자 하는 대표적인 경영인상"이라고 강조했다.
본지는 8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 총장실에서 시라이 총장을 만나 호암과 이건희 전 회장에서 비롯된 삼성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상에 대해 들어봤다.
-와세다대 동문으로서 이병철·이건희 부자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후배로서 두 부자와 같이 훌륭한 선배를 뒀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호암과 이건희 전 회장은 한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기업인입니다. 글로벌 기업으로 손색없는 삼성그룹의 위상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걸음마조차 떼지 못했던 한국의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최첨단 기술력으로 세계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삼성이 너무 의욕적이면 곤란해진다'며 경계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매출 13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웠는데요.
"이 역시 와세다대 동문으로서 무척 기쁜 일입니다. 와세다는 물론 아시아의 자랑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호암이 삼성전자를 설립했던 시기는 한국에 TV가 막 보급되던 때입니다. 당시 한국은 제대로 된 기술력도 갖추지 못했죠.
그러나 호암이 당시 봤던 가능성은 삼성전자가 TV부문 세계 1위로 도약하며 현실화됐습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대 초 호암이 황무지에서 일군 반도체산업도 삼성전자의 핵심부문으로 성장했습니다.
전자공학과 교수 출신인 저는 이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삼성전자가 성장하는 모습을 피부로 실감했습니다. 도전정신 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도전정신 얘기를 하셨습니다. 와세다대가 육성하고자 하는 인재상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와세다대는 2007년 설립 125주년을 계기로 '제2의 건학'을 위해 도약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제2의 건학을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경영인 '롤 모델'이 바로 호암과 이건희 전 회장입니다.
이들은 전 인류적 사명감과 진취적인 도전정신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했습니다. 두 사람이 지닌 국제감각도 매우 탁월합니다. 특히 호암이 한국만 고집하며 한국 최고 기업을 목표로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위상의 삼성그룹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와세다가 키워내고 싶은 인재의 모습도 호암과 이건희 전 회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대학은 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할 때 모든 아시아인들의 중심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들의 활동 범위는 전 세계로 확대될 수도 있겠지요.
이런 인재로 거듭나려면 일본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호암이 한국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일본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다 사업영역과 활동무대를 전 세계로 넓혔던 것처럼 말이죠.
일본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시장에서 안주하는 기업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세계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호암은 삼성의 기반을 닦을 때부터 이미 국가간 경계와 대립을 초월하기 위한 경쟁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건희 전 회장도 선친의 사명감, 도전 정신, 국제감각을 빼닮았고요.
다시 말하면 삼성이 호암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을 계승하며 육성하고 있는 인재들이 곧 와세다가 배출하고 싶은 인재의 모습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한ㆍ일 기업이 두루 발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협력입니다. 특히 기술 부문에서 공동개발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소니와 한국의 삼성전자는 공동개발을 통해 서로 기술개발을 촉진하며 대규모 투자 등에 따른 위험은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비용부담이 크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과도한 경쟁보다는 선의의 경쟁과 선별적인 협력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는 것이 한·일 양국과 기업이 두루 발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끝으로 총장님께서 꼽는 리더의 조건이 있다면요.
"리더는 무엇보다 꿈을 크게 가져야 합니다. 물론 꿈의 크기보다는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큰 꿈을 가진 리더만이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인재를 곁에 둘 수 있는 법입니다. 와세다대 설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는 '정체는 사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꿈이 좌절됐다고 멈춰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삼성은 호암과 이건희 전 회장이 가졌던 큰 꿈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성장 비결은 삼성이 '인재제일'이라는 호암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최고의 인재를 육성한 데 있습니다.
더 큰 꿈을 향해 도약하고 있는 삼성이 창업주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을 이어받아 정체되지 않고 최고 인재의 보고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도쿄(일본)=김재환 기자 kriki@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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