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낙관론이 고급 패션시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비용 부담 탓에 대형 패션쇼 참가를 꺼리던 명품 디자이너들이 속속 런웨이를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
전 세계 패션 디자이너들의 경연장인 뉴욕패션위크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11일부터 일주일간 열리는 뉴욕패션위크에서는 50명 이상의 명품 디자이너들이 참가해 화려한 공개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지난 세 시즌 동안 디자이너들의 참가율이 저조했던 데 비하면 대호황이 예상된다.
경영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는 지난해 8% 위축됐던 명품시장 규모가 올해 1%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명품시장의 회복세를 온전히 누리려면 타깃 선정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명품 백화점 삭스피프스애비뉴의 론 프래시 사장 겸 최고머천다이징책임자(CMO)는 "폭풍이 잦아든 만큼 공세전환을 하고 싶지만 보다 조심스럽게 선정한 타깃 고객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명품업체들이 중저가시장에서 명품시장으로 진입하는 소비자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들의 전략을 소개했다.
스티븐 사도브 삭스피프스애비뉴 최고경영자(CEO)가 펼치고 있는 전략은 '가지치기'. 두가지 시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기존 명품시장으로 희소가치가 큰 명품 브랜드를 제한된 고객에게 판매한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덜한 브랜드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명품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1200 달러대 핸드백 브랜드 '클로에'다. 클로에는 올해 캔버스 천으로 된 신제품 가격을 같은 크기의 가죽 소재 핸드백의 절반 값에 내놨다. 이 제품은 1600달러대의 '마시' 핸드백과 경쟁이 붙으면서 모두 동이 난 상태다. 랄프 톨레다노 클로에 CEO는 공급을 줄인 게 주효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공급이 제한돼 있을 때 고객들은 세일 기간을 놓칠세라 몰리게 돼 있다"며 "희소가치를 실감한 이들은 다시 클레오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기존 명품시장에서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일제히 주문을 줄이는 전략이 취해졌다. 2008년 하반기 몰아닥친 경기침체로 쌓아뒀던 재고가 손실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뜨거운 맛을 본 명품 소매업체들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주문량을 20% 줄였고 일체의 할인행사를 중단했다. 확고한 소비의지를 지닌 고객만 시장으로 끌어모아 매출은 줄더라도 수익은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 소매업체들의 하반기 주문량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영컨설팅업체 AT커니의 하나 벤-샤바트는 5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소비자들이 명품시장에서 소비를 늘리고 있으며 1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소비자들이 명품시장으로 복귀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역시 새로운 고객이다. 경기침체 이전 중저가시장에서 명품시장으로 몰려들었던 이들이 아직 시장 진입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고액 자산가에 비하면 소비여력이 한참 달리는 만큼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큰 탓이다.
때문에 명품업체들은 이들을 유혹할 수 있는 아이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명품 여성구두 브랜드 '지미추'도 365 달러대에 파는 고무창 구두 등으로 제품 카테고리를 확장했다. 일종의 미끼상품인 셈이다. 타마라 멜론 지미추 창업자는 "우리는 항상 고객이 원하는 게 뭐고 고객의 심리상태가 어떤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미국 패션 브랜드 토리버치는 이미 상대적으로 싼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200 달러 미만의 선글라스 등을 제품 카테고리에 추가했다.
이런 전략을 통해 상당수 명품 브랜드들의 매출은 벌써부터 크게 개선되고 있다. 명품 보석업체 티파니는 지난해 11~12월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17% 늘었고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도 지난해 매출이 1년 전보다 8.5% 증가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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