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이 준비중인 출구전략의 방법과 수순을 밝혔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10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그동안 경기부양을 위해 취해왔던 완화적인 통화정책들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에 관해 상세하게 입장을 밝혔다.
버냉키 의장이 출구전략의 구체적인 수순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우선 금융위기 때 은행에 유동성 공급을 위해 담보로 잡아뒀던 국채 및 정부보증채를 은행에 되팔아 은행의 시재금을 회수하는 식으로 시장을 테스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은행의 넘치는 유동성 가운데 일부를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는 은행의 지급준비금의 초과분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율을 인상, 전반적으로 금리인상을 유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연준은 금융위기가 정점을 향해 치닫던 2008년 10월 의회의 승인을 받아 은행의 지준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 조치를 취했다. 법정 지준을 초과해 쌓아두는 자금에 대해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연준이 초과지준에 대해 금리를 올리면, 시중은행의 입장에서는 돈을 떼일 염려가 있는 기업.가계 대출보다 위험이 전혀없는 연준에 지준을 초과해 적립, 안전하게 이자를 챙기는 쪽으로 자금운용 전략을 바꾸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실세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유동성 환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버냉키 의장은 연 0∼0.25%로 사실상 제로(0)수준으로 떨어진 연방기금금리(정책금리)를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우선 초과지준 금리를 올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한 것으로 보인다.
연방기금금리는 경제의 모든 분야에 효과를 미치는데 반해 초과지준 금리 인상은 지준적립 의무가 있는 시중은행에만 적용되므로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정책금리 인상은 출구전략의 맨 마지막 단계에서 시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버냉키 의장은 이와 병행해 재할인 금리 인상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기 때 연준은 재할인율을 인하함으로써 단기자금 시장에서 돈줄이 막힌 은행들의 숨통을 틔워줬다.
재할인율은 단기자금이 과잉인 은행들이 연준에 잉여자금을 예치해 받을 수 있는 금리이기 때문에 재할인율 인상은 유동성 흡수효과를 발휘한다.
경기가 확실하게 성장궤도에 진입한 가운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빠르게 높아질 경우 위에 열거한 수단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고 버냉키 의장은 강조했다.
이러한 조치들을 시행하는 가장 큰 전제조건은 시장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버냉키 의장은 현단계에서는 미국 경제가 여전히 경기부양적인 통화정책을 필요로 하고 `초저금리 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특히 유동성 공급을 위해 연준이 시장에서 직접 매입했던 장기물 국채 등에 대해서는 만기가 도래하기 이전에 앞당겨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입장은 기존의 통화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 가되, 금융기관과 시장에 충준비기간을 줘 내성을 차근차근 키운 후 출구전략을 성공적으로 펼쳐 나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주경제= 박유경 기자 story31@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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