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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이발소(수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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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2-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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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회장님은 면도기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썼다. 일본인들이 잊은 질소검약(質素倹約)의 정신을 갖고 계셨다” 모리타 이용점 4대째인 모리타 야스히로(62.사진)씨는 호암의 질소검약 정신을 현 일본인들이 잊은 미덕이며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옛 일본인들은 언제나 물건을 아끼고 물건의 소중함을 중요시 생각하며 현재의 일본이라는 경제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현 일본인들은 물건의 소중함과 물건을 아끼는 정신 “질소검약의 정신” 잊고 있다.

이병철은 자신이 사용하는 한 면도기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사용했고 모리타 이발소는 그의 질소검약의 정신을 사랑했다.

“헹켈사의 면도기는 일반사람들이 다루기엔 어려운 물건이에요. 그것을 평생 애용하셨습니다”

헹켈사의 면도기는 현재 사용되는 안전면도기 전기면도기와 달리 직선날면도기로 일반인들이 다루기엔 매우 어려운 물건이다. 이 면도기는 고급면도기이긴 하지만 평생 그것을 고집하고 애용한 물건을 아끼고 물건의 소중함을 아는 질소검약의 정신을 가진 기업인이라는 말이다.

삼성전자의 매출과 이익에서 각각 100조원과 10조원을 달성한 것은 이러한 호암의 허리띠를 졸라 매는 정신을 이어받았기에 고강도 원가 절감 노력과 함께 비용 효율화를 위해 직원들의 성과급과 복리후생을 줄이는 등 긴축경영으로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하들도 동행하지 않고 혼자 오셔서 언제나 웃음지면서 늘 같은 자리에서 이발을 하셨다” 모리타씨는 호암의 자신의 가계를 호암 개인의 안식의 장소로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1년의 5~6번은 이용해주셨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쇠약해져서 한 두번 오셨지만 이발할 수 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병철은 말년에 병마와 싸우는 시기에도 그는 모리타 이발소를 찾아왔다. 그는 맨 구속에 있는 자신의 지정석에서 말없이 늘 웃음지면서 늘 같은 서비스 받았다.

“업무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보통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야기하고 싶은 법이잖아요 그런데 회장님은 일제 하지 않아 셨어요” 이병철은 개인의 쉼터로서 이 이발소를 찾아 왔고 그는 경영신의 이병철의 모습과 달리 인간 이병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장소였다.

“이회장님의 책을 보고 찾아온 한국인손님들이 있었어요”

호암의 자전을 보고 이 이발소를 찾아오는 한국인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주재원으로 온 한국인이
2년 동안 애용해준 한 한국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한 한국 분이 이회장님의 책을 읽고 찾아왔어요. 그는 2년의 근무가 끝난 후 한국에 돌아갔지만 늘 저의 이발소를 애용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이 손님 외에도 호암의 자전을 읽고 찾아 오는 한국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호암이 감동받은 장인정신에 관해 말했다. “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잘았어요. 아버지가 게으름피고 일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하찮은 일이면 대를 이어가지 않았을 거에요”라고 말해 “저는 아버지가 착실하고 노력을 게으르지 않은 뒷모습을 보면서 4대째를 이어가기로 결심했어요”라고 말했다.

일본의 장인정신이 이어가는 것은 이러한 착실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이들의 눈으로 봤을 때 존경스러운 아버지로 보이기 때문에 이어가는 게 아닌가라는 말이다.

호암은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의 아이들 후손들 부하들에게 보임으로서 현재의 삼성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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