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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아직까지는 우리 재정이 건실하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재정지출 증가로 인해 국가채무가 일시적으로 늘었다고 설명한다.
반면에 우려를 제기하는 측은 공기업 채무까지 포함하게 된다면 국가채무 규모는 GDP의 70%에 육박하며, 향후 저출산 고령화 추세, 통일비용 등으로 인한 재정수요를 감안할 경우 이미 우려할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국내에 파급되면서 경기 급락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에 최근 공공 부문의 부채가 급증하게 됐다.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공기업이 다소 무리해서 민간 부문의 빈자리를 메우는 과정에서 채무가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국가채무가 늘어나면 나라에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사업을 추진하려면 막대한 자금(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의 수입, 즉 세수가 부족하다면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채권을 발행해서 국민들에게 팔거나 해외에다 팔아서 조달해야 한다. 또 만기가 돌아오면 정부는 상환을 하거나 다시 채권을 발행해서 갚아야 한다.
채권자의 대부분이 내국인이라면 별로 우려할 상황이 아니지만 상당수의 채권자가 외국인일 경우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일시에 상환 요구를 하게 되면 국가부도가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최근 문제가 되는 그리스의 경우 자국민의 저축률이 낮은 상태에서 대부분 유로화로 외국의 채권자에게 빚을 갚아야 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국가부채 규모가 GDP의 200%가 넘지만 대부분의 채권자가 내국인이므로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엔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국내의 논의 중에서도 국가부채가 증가하면 재정위기가 발생하고 이것이 과거에 경험했던 국가부도 사태 및 IMF 구제금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국채가 국내에서 소화되고 있어 국가부채 중 외채의 비중이 낮으며, 외환보유고도 넉넉하기 때문에 재정악화로 인한 국가부도의 가능성은 우려할 수준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적정한 국가부채 규모에 대해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재정 당국과 학자들 사이에서 OECD 평균, 주요 20개국(G20) 평균 등의 지표를 참고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표들과 비교하려면 비교 대상이 되는 외국의 지표들과 동일한 잣대로 비교를 해야 한다.
국제기준 운운하면서 공기업 부채를 국가부채에 집어넣고 재전건전성을 논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IMF '재정통계편람'도 공기업 부채는 정부 채무에서 제외하고 있다. 국가부채 통계에 공기업 빚을 포함시키는 나라도 없다. 공기업 부채 중 어디까지를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봐야 될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들은 포함하지도 않고 있는 공기업 부채를 통째로 국가 부채에 포함시켜서 우리의 재정건전성을 논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내 자식이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부모에게 손을 자주 벌리기 때문에 자식의 빚도 내 빚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물론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공기업의 부채에 대해서는 별도로 통계를 작성하고, 이 부채에 대해서는 국가 채무와 같은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부채를 누구의 부채라고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리해야 할 공기업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 보다 시급하게 할 것은 바로 공기업 경영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공기업 부채를 억지로 국가부채라고 끌어다 부치고 걱정해 봐야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외국에서도 마치 우리 정부가 재정부실을 감추고 있다는 억측을 낳을 수도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국내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국 투자자들이 근거 없는 소문에 따라 썰물처럼 자금을 빼내간 결과 국내 경제가 요동쳤던 상황을 종종 경험했다.
외국의 국가부채 문제와 재정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재정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재정건전성 유지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재정 전문가들이 우리의 현실을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정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국가의 장래를 위한 건설적인 대안들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도건우 삼성경제연구소 공공정책실 수석연구위원 <dokorea@seri.org>©'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