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했던 한 해의 삶과 지친 마음에 설날연휴는 올해에도 변함없이 고향의 가족 친지들을 만나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소통의 마당이었다.
설 연휴 동안 으뜸가는 화제는 역시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경제난으로 고단한 날을 보내고 있는 탓이다. 특히 취업난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향길을 포기한 청년실업자나 그런 자식을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어른들로서는 경제회복이야말로 무엇보다 절실한 기다림이 아닐 수 없다.
'민심 탐방'을 마친 정치인들이 전하는 민심 역시 '정쟁보다 민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부패하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에 대한 염증과 함께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큰 걱정거리라는 서민들의 육성을 듣고 온 것이다.
설 연휴기간 지역구를 돌아본 한 여당 의원은 "이제는 원망조차 않더라"고 전했다. 서민경제의 침체로 꽁꽁 얼어붙은 바닥민심은 정치권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 싸움은 그만하고 경제 살리기에 몰두해야 한다는 게 여론의 현주소였다.
설 민심이 유난히 흉흉했던 것은 경기 불황 탓만이 아니다. 희망의 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삼류 정치 탓이 크다. 경제난을 풀어야 할 책임의 한 축은 정치권에 있다.
현안을 챙기고 필요한 법안을 손질해 경제 활성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그들의 책무다. 그러나 당리당략에 함몰돼 민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설 민심을 들여다보면 그런 질타가 빼곡히 담겨 있다.
그런데 정작 민심을 읽는 정치인들은 그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세종시 문제만 해도 여야 각 정파가 벌써부터 설 민심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니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정치권은 그동안 매년 추석이나 설 명절이 닥치면 바닥 민심을 훑는다며 법석을 떨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 나겠더라. 어디 가서 국회의원이라는 명함도 못 꺼내겠더라"고 반성하는 척했다. 하지만 막상 국회가 열리면 이내 정쟁에 매몰되곤 했다.
그런 일이 너무 여러 차례 반복되다보니 이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자성에도 국민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정치인 스스로가 '양치기 소년'을 자청했으므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이번 설 귀향 활동을 통해 민심의 향배를 충분히 읽었을 것이다. 이제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파악했다면 더 이상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이나 행동은 삼가는 게 마땅하다.
그동안 세종시 문제만 하더라도 여야는 민심의 소재를 파악하기는 커녕 제 주장을 펼치는 데만 골몰해 왔다. 여야가 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르지는 못할망정,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행동을 해온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찬성·반대를 떠나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염증과 피로도는 한계에 다다랐다. 언제까지 온 나라가 세종시 문제에 함몰돼 국력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야는 공히 설 민심의 경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세종시 논란의 출구를 찾아야 한다.
설 민심을 정확하게 알고 나서, 여야 정치권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민심의 뼈대 위에 살을 붙여 입법과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민생과 경제살리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2월 임시국회를 소집했던 배경을 생각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아주경제= 서영백 기자 inch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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