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남자 500m의 모태범(21.한국체대)에 이어 이상화(21.한국체대)마저 여자 500m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 스피드스케이팅 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상화는 17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벌어진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1,2차 레이스 합계 76초09를 기록, 세계기록 보유자 독일의 예니 볼프(76초14)를 0.05초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상화는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아시아 여자 선수로는 첫 금메달을 기록했다.한국은 21살 동갑내기 모태범과 이상화가 대 이변을 연출하며,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스피드스케이팅 500m를 석권한 국가가 됐다.
한국의 동반 금메달은 하계올림픽 육상 남녀 100m 금메달을 석권한 것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다. AP, AFP, 로이터 등 각국의 주요 통신사들도 “놀랍다, 한국이 남녀 스프린트 종목을 휩쓸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500m는 스타트의 순발력과 끝까지 치고 나갈 수 있는 근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종목이다. 승부도 0.1초 내외에서 갈린다. 신체조건이나 체력적으로 우리에게 쉽지 않은 종목이다.
이런 결과는 이번 올림픽을 철저히 준비해온 한국 빙상 계 전체의 승리다.
그 이유는 첫째, 협회의 끊임 없는 투자와 준비를 들 수 있다. 올림픽 때마다 메달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에 비해 관심 밖이었던 스피드 스케이팅은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이강석이 500m 동메달을 따낸 후 4년을 준비했다. 쇼트트랙에 밀렸다는 잠재된 피해의식을 오히려 금메달이라는 뚜렷한 목표의식으로 발전시켰다. 한국 빙상연맹 김태연 과장은 “스피드 스케이팅 팀은 매년 12월부터 3월까지 전 세계 10여개 대회를 돌며 경기력과 경쟁력을 강화했다”며 “시즌이 끝나면 태릉선수촌에서 집중적인 체력훈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도 지난 14년 동안 빙상연맹에 100억원이 넘는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둘째는 부드러운 팀 분위기와 과학의 힘이다. ‘맏형’ 이규혁을 중심으로 이강석·모태범·문준 등 완벽한 신구조화를 이뤘다. 이규혁은 도우미 역할을 자청하며 후배들에게 모범이 됐다. 수많은 실전 경험을 나누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다. 종목 특성상 각자의 코스를 뛰는 스피드 스케이팅은 순수한 기록경기다. 파벌이나 외부 영향이 전혀 없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개인 종목이지만 오히려 팀워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 있다. 체육과학연구원(KISS)도 개인별 체력과 스타트 반응시간을 분석, 선수별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시켰다. 과학적 트레이닝 효과는 최악의 빙질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 원동력이 됐다.
셋째는 이른바 엘리트 교육의 효과다. 전문가들은 모태범과 이상화의 장점을 흔들리지 않는 자세와 근지구력, 그리고 빠른 반응속도를 꼽는다.
서울 동대문구 은석초등학교 때 스피드 스케이팅을 같이 시작한 모태범과 이상화는 정풍성 코치와 윤의중 전 대표감독의 지도로 기초를 잡는다. 낮은 자세는 필수다. 그래야 얼음을 지치는 길이가 길어져 더 많은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몸에 맞춘 낮은 자세는 빙질이 좋지 않은 오벌 경기장에서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스타트부터 흔들렸지만 모태범과 이상화는 오히려 막판까지 스퍼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윤의중 감독도 “처음부터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둘 다 승부욕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모태범과 이상화의 동반 금메달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선 두 차례의 도전에서는 ‘쇼트트랙만 강한 한국’이라는 세계 언론의 편향적 이미지 때문에 손해를 본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쇼트트랙뿐만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피겨스케이팅에 봅슬레이·스키까지 종목의 다변화로 한국은 동계스포츠 강국의 면모를 갖췄다. 밴쿠버에서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진선 강원지사 겸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도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피드 스케이팅의 발전을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은 여전히 많다.
국내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층은 터무니없이 얇다. 초등학생부터 일반선수까지 남녀 합쳐야 겨우 200여명 남짓이다. 스피드 스케이팅을 국기처럼 여기는 네덜란드나 이웃 일본의 경우는 정규선수만 5000여명으로 선수층이 두텁다. 훈련 인프라도 문제다.
밴쿠버나 기타 실내 링커의 온도는 15~17도를 유지한다. 국내 유일한 빙상 훈련장인 태릉선수촌 실내링크는 말만 실내다. 난방시설이 없어 영하의 날씨에서 훈련을 해야 한다. 이렇듯 열악한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적에 맞는 시설 확보가 필요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도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에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윤용환 기자happyyh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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