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저녁. 1억700만명의 미국인들은 미 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을 보기 위해 TV 앞에 둘러앉았다. 여느 해와 같은 풍경이었지만 달라진 점도 있었다.
TV 중계 사이에 지난 23년 동안 매년 등장했던 '펩시' 광고가 사라진 것이다. 슈퍼볼의 광고효과를 감안하면 상당한 이변이었지만 펩시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이른바 '공익연계마케팅(Cause Related Marketing)'이다. 펩시는 30초짜리 슈퍼볼 TV 광고 비용 20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핵심은 '생색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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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는 '리프레시에브리싱(Refresh Everything)'이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온라인 투표로 선정된 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은 온라인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웹사이트(refresheverything.com) 캡처 화면. |
펩시는 네티즌들에게 온라인 투표로 5000~25만 달러의 기부금을 줄 단체를 뽑도록 하면서 '선행' 사실을 넌지시 강조하고 있다.
경쟁사인 코카콜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코카콜라는 슈퍼볼 TV 광고와 공익연계마케팅을 두루 챙겼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슈퍼볼 광고를 볼 때마다 1 달러씩 최대 25만 달러를 미 자선단체인 보이스앤걸스클럽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펩시와 코카콜라 등 글로벌 기업들이 온라인의 힘을 빌어 공익연계마케팅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터에 기업들이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 확산에 나선 것이다.
미 신용카드업체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미디어업체 NBC유니버설도 '한 줄기 빛을 비춰라(Shine a Light)'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 투표로 선정된 중소기업에 10만 달러를 전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기업들이 자선사업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만한 보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 컨설팅업체인 콘에 따르면 같은 종류의 제품이라면 착한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를 선택하겠다고 답한 소비자 비율이 1993년 66%에서 2008년 79%로 늘었다. 또 착한 기업의 제품을 구입했다고 답한 소비자도 20%에서 38%로 증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들이 착한 기업의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제품 구매와 동시에 선행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종의 심리적 보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익연계마케팅이 빠르게 확산되는 데는 인터넷의 공도 크다. 인터넷을 통하면 기업의 자선활동에 누구나 큰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우스만 몇 번 클릭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참여율도 높아 기업입장에서는 새로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JP모건체이스가 최근 벌인 '체이스커뮤니티기빙(Chase Community Giving)' 행사가 좋은 예다. 이 은행은 페이스북을 통한 네티즌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자선단체에 5만 달러를 기부했다.
주목할 건 투표에 참가한 200만명의 네티즌 가운데 대다수가 JP모건체이스 고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결국 200만명에 가까운 잠재 고객에게 기업의 착한 이미지를 새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기업들이 특정 영역의 공익 사업에만 몰두하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온라인 인기 투표를 활용한 자선활동은 소비자들에게 기업이 단기적인 관점에서 인기만 좇는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일랜드 그룹 '유투(U2)'의 리드싱어인 보노가 설립한 자선단체 레드(RED)의 수잔 스미스 엘리스 대표는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과 관련해 "최근 애플과 갭, 나이키 등 10개의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1억4000만 달러의 기금을 모았다"면서도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에이즈 퇴치라는 본래 취지가 오프라쇼의 코너처럼 단기성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공익사업도 경계하라는 주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펩시가 보다 다양한 건강음료를 개발해 판매하거나 코카콜라가 개발도상국의 물부족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이 기업가치와 무관한 자선활동을 펼치는 것보다 기업의 미래가치를 높이는 데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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