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시작된 삼성의 ‘신경영’은 이후 라인스톱제와 7·4 근무제도로 이어진다.
라인스톱제는 말 그대로 공장의 생산라인을 멈추는 것을 뜻한다. 정해진 기일 안에 예정된 생산량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생산을 중단하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거래선과 약속한 납품기일을 어길 수도 있다. 수요가 몰리는 시기에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면 판매량도 크게 떨어진다. 이는 매출과 직결돼 상황에 따라 기업의 존폐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은 그해 6월 세탁기 라인 가동을 중단시키며 라인스톱제를 이끌어냈다. 수량을 맞추기 위해 제품에 불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대로 생산하는 시스템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은 A/S가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바로 이를 수리·해결하는 인력 확충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당시에도 삼성은 비교적 많은 수리 인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생산인력이 3만명인 삼성전자는 수리인력만 6000명을 확보하고 있었다. 때문에 “삼성 제품은 고장이 나도 바로 수리할 수 있다”는 국내 고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전 회장은 오히려 이러한 구조에 문제를 제기했다. “수리인력이 생산인력의 5분의 1에 달하는 시스템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국내 주부들과 젊은이들에게 최고 인기였던 일본 제품은 '코끼리 밥솥'으로 알려진 일본 ‘조지러쉬’사의 전기밥솥과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병행수입된 이들 제품은 하자가 생겨도 국내에서 정식으로 A/S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 제품이 오랜 기간 인기를 모은 이유는 하나다. 어지간해서는 고장이 나지 않아 굳이 A/S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전 회장은 이를 주목했다. 당시 국내 시장에서 이미 1위 자리에 오른 삼성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해외에서 국내 수준의 A/S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제약이 따랐다. 때문에 일본 등 선진국 수준으로 불량률을 줄이는 것은 향후 삼성의 성장에 필수과제였다.
라인 스톱제는 단기적으로 삼성의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제품 품질에 이상이 있는 라인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운행을 중단했다. 생산량은 줄었다. 월급을 주고 고용한 생산인력들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손을 놓아야 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삼성 비서실과 계열사 사장들의 만류와 우려에도 이를 고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재 삼성 제품이 해외에서 거두고 있는 성적표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TV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휴대폰도 부동의 2위를 달리고 있다. 가전제품도 속속 해당 시장 선두에 오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LCD 등 주요 부품 역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에는 삼성전자의 품질향상이 큰 역할을 했다.
생산현장에서 라인 스톱제가 있다면 업무시스템의 개혁은 7·4 근무제로 대표된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는 혁신적인 업무시간 변경은 일정부분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정통한 I자형 인재보다는 다방면에 능통한 T자형 인재를 선호한 이 전 회장은 이러한 출퇴근 제도를 통해 구성원들의 자기계발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일부 계열사에서는 출근 시간은 7시로 앞당겼지만 퇴근 시간은 종전의 6시를 고수했다. 밝은 대낮에 퇴근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정서도 발목을 잡았다. 조직원들의 반발도 거세졌다. 사실상 출근만 앞당겨 결과적으로 업무시간만 늘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결국 7·4 근무제는 2000년을 전후해 순차적으로 폐지됐다. 다만 삼성은 최근 이 취지를 살리면서도 부작용을 줄인 업무제도를 내놓았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4월 자율출근제를 시행한 것. 획일적인 출근 시간을 폐지하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할 수 있도록 한 이 제도는 구성원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회사 측 역시 업무 효율이 높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자율출근제 시행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 신경영의 상징인 이들 제도는 각각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성패 여부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이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삼성의 혁신을 이끌어 냈다. 이후 삼성은 크고 작은 변혁을 시도한다. 이 가운데 큰 성과를 보인 사례도 있지만 실패하거나 흐지부지 된 경우도 상당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선을 위해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결국 삼성의 전제척인 위상도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경제= 특별취재팀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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