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시리즈 21] 휴대폰 화형식, '글로벌 넘버원' 초석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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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3-0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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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9일 오전 10시.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 한 가운데서 화염이 일었다. 무선전화기·팩시밀리·휴대폰 등 10만대 이상의 삼성 제품들은 산산조각난 상태로 불구덩이 속에 던져졌다. 자리에 모인 수천명의 삼성전자 직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일부는 흐느꼈다. 불타는 것은 전화기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만든 제품이 한줌 재로 변하는 동안 직원들의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 갔다.

휴대폰 화형식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1986년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카폰 'SC-100'을 출시,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지만 삼성 휴대폰 품질에 대한 불만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돈을 받고 불량품을 파는 것은 고객들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이 전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1988년 제2 창업 선언과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더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 라인스톱제에 이르기까지 이 전 회장은 '품질경영'을 무엇보다 강조해왔다.

휴대폰 사업에 대한 이 전 회장의 관심은 특별했다. 당시 휴대폰을 중요한 미래 산업으로 여겼기 때문. 제품개발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연구진들과의 회의를 직접 주관할 정도였다.

하지만 휴대폰 제조사로서 삼성은 3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해외는 말할 것도 없었다. 국산품 애용 의지가 높은 국내에서도 푸대접 받았다. 모토로라·도시바·교세라 등 선진 업체들의 기술장벽은 높았다. 의욕적으로 새 제품을 내놓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제품의 품질이 해외업체에 비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품질 개선과 '불량은 암이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변화와 개혁을 독려했지만 개선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결국 이 전 회장은 충격 요법을 썼다. "이미 시중에 출시된 제품을 모두 회수해 공장 직원들 앞에서 태워 없애라"는 초강수 처방을 내렸다.

당시 무선사업부 이사 였던 이기태 삼성전자 전 부회장은 화형식 당시에 대해 "내 혼이 담긴 제품이 불타는 것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했다. 나중에 타고 남은 재를 정리할때 이상하게도 결연함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화형식 현장에 있었던 당시 삼성전자 직원 역시 "화형식 당시에는 야속한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오기가 생겼다. 현장에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불량률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도 들었다"고 전했다.

화형식 당시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은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1993년 10월 출시된 'SH-700'은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애니콜 신화의 성공 신호탄을 쐈다. 1994년 말 국내에서 삼성 휴대폰 점유율은 30%를 상회했다. 화형식 4개월 후에는 점유율 50%를 넘겼다. 이미 국내 사장에서 괄목할만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던 것.

하지만 이 전 회장은 눈에 보이는 수치에 만족치 않았다. 당시 그는 '애니콜'의 세계 시장 공략을 꿈꿨다. 국내에서는 '삼성' 브랜드에 기대 일정 부분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품질로는 해외시장에 도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화형식은 단순히 불량제품을 생산한 직원들에 대한 꾸짖음은 아니었다. 대외적으로 삼성 휴대폰의 질 경영 의지를 표명한 것. 아울러 불량률이 높았던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이 전 회장의 '주마가편'(走馬加鞭) 경영도 이같은 충격요법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 전 회장은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오히려 선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도체 사업이 승승장구하고 있을 당시 이 전 회장은 오히려 '수율' 문제를 거론하며 호통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초반 휴대폰 사업이 폭발적으로 선전하고 있었지만 직접 휴대폰 디자인과 그립감, 기능 등을 챙기며 분발을 촉구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에서도 그의 경영 스타일은 그대로 이어졌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LED TV를 선보이며 세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올해에도 앞선 3D TV 기술을 선보이며 국내외 언론과 바이어들의 이목을 집중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안경 착용감이) 다 거기서 거기"라며 경쟁사에 비해 앞서지 못한 삼성전자 3D TV 전용 안경에 대한 불만을 표했다.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윤부근 사장에게 "안경은 여기(코받침과 안경다리)가 편해야 한다"고 직접 주문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기술진들은 안경 착용감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지난 25일 전용안경 무게를 30g으로 줄였다. 이는 기존 안경의 40% 수준으로 선글라스와 무게가 비슷하다. 일반 안경(20g)과도 차이가 10g에 불과하다. USB 충전식 안경도 선보였다. 기존 제품에 적용되는 니켈전지를 뺌으로서 무게를 줄였을 뿐 아니라 배터리 교체로 인한 번거로움도 없앴다.

화형식 이후 삼성 휴대폰의 성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2002년 삼성전자는 4300만대 판매에 성공하며 세계 3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연간 판매량 2억대를 돌파했다. 점유율은 20%를 넘어섰으며, 영업이익률도 10%를 상회했다. 1위 노키아와의 격차도 매분기 줄어들고 있다. 휴대전화 시장의 전통의 강자였던 모토로라는 주력시장인 북미에서도 삼성에 1위 자리를 내어줬다. 1995년 국내 시장 장악에 만족했다면 삼성 휴대폰의 이같은 성과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전자 전체 성적은 더욱 화려하다.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136조2900억원, 영업이익 10조9200억원을 기록해 국내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 100조-영업익 10조' 클럽에 가입했다. 매출액을 달러로 환산하면 1170억 달러다. 지난해 매출 1146억 달러를 달성한 미국 HP, 1098억 달러 매출을 올린 독일 지멘스를 추월한 것. 이로써 삼성전자는 전세계 유수의 전자기업을 제치고 '글로벌 넘버원'의 자리에 올랐다.

이같은 삼성의 화려한 비상에는 이 전 회장의 공로가 크다. 그는 중요한 길목에서 화형식을 비롯해 수많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는 기업의 도약을 이끌었다. 지난해 냉장고 폭발사고 당시 삼성전자 창립 40주년 행사를 앞두고 대대적 리콜에 나선 것도 이 전 회장의 '품질경영' 철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도요타가 리콜 파문으로 끊임없는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 품질을 소홀히 여긴 탓에 그간 쌓아놓은 명성과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이 전 회장의 품질을 앞세운 경영은 더욱 빛을 발한다. 끊임없는 개선 노력과 1위 자리에 오른 후에도 지속된 품질 경영을 통해 삼성전자는 넘버원 전자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이 지속되는 한 삼성의 1위 수성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아주경제= 특별취재팀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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