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지난해 말부터 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을 대량으로 회수하고 있어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축소(디레버리지)에 나서면 기업과 가계의 심리가 위축되고 자본력이 떨어지는 등 경기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한국은행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예금은행의 총대출은 전기 대비 5조1000억원 줄며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지난 1998년 4분기 이후 11년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기록했다.
이 기간 예금은행의 산업대출은 전기보다 9조5000억원이나 축소됐으며, 기업대출도 관련 통계작성되기 시작한 지난 2007년 이후 처음 감소 전환했다.
가계대출 역시 407조6000억원(1월 말 기준)으로 전월 대비 1조289억원 축소됐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 국내 16개 은행의 여신업무 총괄담당 책임자를 대상으로 면담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은행의 대출태도지수 전망치는 -6으로 집계돼, 앞으로도 은행들의 대출 축소 움직임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처럼 은행이 대출을 줄이고 있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서 은행들이 부실채권 관리에 집중했고 기업들이 부채상환 및 투자축소에 나섰기 때문이다.
또 지난 5~6년 동안의 경기 활황으로 은행들이 시장에 풀었던 과잉유동성을 정상화하기 시작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실제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2004년부터 연간 4~6%대 성장을 유지하며 지난 2008년에는 1023조9337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금융기관이 가진 유동성(Lf)은 △2005년 1391조5596억원 △2006년 1538조2997억원 △2007년 1691조5652억원 △2008년 1845조1991억원으로 매년 10% 안팎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금융위기 여파에도 유동성 공급이 확대되며 2018조7850억원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2000조원을 넘어섰다.
LF는 예·적금, 시장형 및 실적배당형, 금융채 등을 포함한 광의통화(M2)에 2년 이상의 유동성 상품과 생보사의 보험계약준비금 등을 합한 수치다.
이와함께 지난해 하반기 금융당국이 은행에 예대율 100%룰을 제시한 것도 은행이 대출을 축소하고 있는 원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은행들의 이 같은 디레버리지가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대출축소는 기업의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는 요인이 되지만 거시경제 차원에서 민간 부문의 투자활동과 고용여력이 축소되는 등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샤론 램 모건탠리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수출 증가세에 대한 관점은 유효하지만 내수에 대한 불확실성과 세계적 경기 부양책의 약화가 관건"이라며 "한국 정부는 재정적으로 부양 기조를 유지하고 인프라 및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처드 돕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장도 "본격적인 디레버리징은 과거보다 더 긴 기간에 걸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가계 부채 축소가 현실화될 경우 소비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둔화되고 소비자들의 지출 패턴 역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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