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스타힐스

[삼성시리즈 25] 이건희 퇴진 이후의 삼성, 그리고 오너경영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0-03-08 14:38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저는 오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 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 안고 가겠습니다. 그동안 저로부터 비롯된 특검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진심으로 사과 드리면서 이에 따른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이건희 삼성 전 회장. 2008년 4월 22일 삼성 쇄신안 발표 중)

   
 
  2008년 4월22일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이 사퇴 발표를 앞두고 그룹 임원들과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는 모습.
2008년 4월 22일, 20년 4개월간 삼성호(號)를 이끌어온 이건희 삼성 회장이 퇴진했다. 2007년 10월 삼성그룹의 법무팀장을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 여파는 이 전 회장 개인은 물론 삼성그룹 전체 경영에 치명타를 안겼다.

그룹의 2인자로 10년동안 전략기획실(비서실·구조조정본부)을 이끌어온 이학수 부회장과 그룹의 재무를 담당해온 김인주 사장도 동반 퇴진했다. 70년 삼성의 도약을 주도했던 전략기획실은 해체됐다.

경영승계를 준비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현 부사장)는 고객총괄책임자(COO) 자리에서 물러났다. 소니와의 LCD 합작사인 S-LCD 등기이사 직도 사임했다. 부인 홍라희 여사는 리움미술관 관장과 문화재단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경영 승계를 위한 작업도 전면 정지됐다. 이 부회장이 백의종군하기로 함에 따라 경영능력을 인정 받을 기회가 뒤로 미뤄졌다.

삼성의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0%에 육박한다. 이 부사장의 경영 능력을 충분히 피력할 수 없다면 이익에 우선하는 이들이 경영권 승계에 반발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한때 6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외인들이 이 전 회장 체제를 지지한 것은 그의 경영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부사장은 부친 이상의 경영 능력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과거 이 부사장이 주도했던 e삼성 사업은 이렇다 할 결실 없이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일각에서는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해 e삼성을 지원했지만 결국 계열사에 부실을 떠넘겼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이 부사장으로의 지분 전환을 주도해온 김인주 사장의 퇴진도 치명적이다.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오너일가의 삼성 지분은 1.07%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오너 일가가 삼성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계열사 간의 지분 순환구조의 덕이 크다. 순환출자를 통해 삼성의 내부지분률은 46.02%로 껑충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를 이 부사장에게 이양하기 위한 작업에 차질이 생기면서 경영권 승계도 미뤄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전 회장 퇴진과 경영기획실 해체가 2년 후 삼성은 당시 우려와는 반대로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같은 해 하반기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삼성은 뚝심을 발휘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다수 계열사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히려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 퇴진 이후 삼성을 이끌고 있는 경영진들은 이같은 삼성의 새로운 경영 성과에도 우려가 크다.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와 반도체총괄 권오현 사장 등 주요 경영진들은 지난해 오너체제 복귀를 희망하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위기극복의 열쇠는 그동안 오너 체제 아래에서 위기에 대비한 전략이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면 이후 이 전 회장의 행보 역시 오너체제의 부활 가능성을 보여준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회장은 "(경영 복귀는) 아직 멀었다"며 복귀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전시회에서도 이 전 회장은 직접 삼성전자 부스는 물론 경쟁사의 부스를 돌며 첨단 기술 트랜드와 제품 분석에 나섰다. 삼성 제품에 대한 개선 요구도 이어졌다. 지난해 냉장고 폭발 사고 당시 '대노'(大怒)한 사실도 알려졌다. 이후 삼성전자는 대대적 리콜에 들어갔으며 당시 생활가전 부장인 최진균 부사장은 결국 물러났다.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이 전 회장은 여전히 간접적으로 삼성의 경영을 이끌고 있다. 

아울러 최근 이 전 회장이 등장하는 곳에 이학수 전 부회장도 항상 모습을 드러내며 이 전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 이 전 부회장은 삼성그룹 고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올해 인사를 이 전 부회장이 주도했다는 후문이다.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자료 폐기 논란'으로 2008년 4월 삼성증권 사장직에서 물러난 배호원 사장은 지난해 1월 삼성정밀화학 사장으로 복귀했다. 삼성의 관례를 감안하면 사장직 사퇴 인사가 다시 계열사 사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파격이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변화된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과거의 경영체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오너일가의 경영체제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해 위기 이후 도요타자동차는 전문경영 체제에서 14년만에 오너경영 체제로 복귀했다. 최근 리콜논란도 전문경영인 체제의 단기 실적 위주 경영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의 이상적 모델로 손꼽히는 소니 역시 최근 미래 경영에 실패해 전자산업에서 한국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때문에 삼성의 오너 위주의 강력한 경영 리더십 역시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 재평가받고 있다. 전문경영인은 임기 안에 성과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 기반 마련에 자칫 소홀해지기 쉽다. 도요타와 소니가 흔들리는 동안 현대기아자동차와 삼성이 약진한 것은 수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준비에 철저히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 경영은 결정권이 한 곳에 쏠리기 때문에 오너 일가의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권력이 집중되면서 사내의 감시와 견제가 소홀해 질 가능성도 있다.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 바로 오너경영이다. 때문에 삼성의 오너경영 복귀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성과 반대로 일관하는 것은 삼성을 위해서도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삼성의 오너경영의 도덕적 위험성은 물론 사업적 장단점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삼성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이에 대한 전국가적인 고민이 요구된다. 이미 삼성은 오너일가만의 기업이 아니다. 그동안 국가경제 발전에 공을 세운 것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반대로 그간 삼성의 선전을 위해 우리 정부와 국민, 중소기업들도 지원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경제= 특별취재ehn@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