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업 편집자주] 건설업계가 연쇄 부도 공포로 숨을 죽이고 있다.중견건설사 가운데 4~5개의 추가 퇴출설이 이미 시중에 유포 중이다.건설업의 금융경색은 소수 상위 건설사를 제외한 모든 건설업과 연관산업, 금융기관의 위기로 확산이 불가피해 보인다. 부동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점차 수면으로 부상하기 일보 직전이다
건설업 위기는 미분양 아파트 증가, 입주율 저조, 무리한 공공공사 저가 출혈경쟁 등이 표면적 이유다. 건설업계는 그러나 정부의 규제정책을 더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시중 자금의 부동산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주택금융규제 확대, 재정절감을 위한 저가낙찰 유도, 분양가 인하를 내세운 민간아파트의 분양가상한제 유지 등 정부정책이 부동산을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하는 실체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변화하는 건설산업의 특성을 기업들이 제대로 읽지 못하고 기존 사업방식만을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나오고 있다. 무조건 정부의 지원과 규제완화만 기대하고 있을 게 아니라 변화하는 정책, 트렌드에 맞게 건설산업도 바뀌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본지는 건설산업에 방향을 모색하는 의미로 현재 건설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원인, 대책 등에 대해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상)손 놓은 일터.."어디로 가야하나"
A중견건설사 재무담당인 김모 부장의 하루는 회사의 거래은행 통장을 체크하는 일로 시작한다. A사가 수도권에 분양한 신규아파트가 6개월 전 입주를 시작했지만 입주율이 20%도 채 안돼 공사비로 빌린 은행대출을 막기 어려워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침 8시30분 직원들과 회의를 마친 김 부장은 주거래 은행으로 달려간다. 은행문이 열리는 시간과 동시에 은행 담당 직원을 만나 현 상황을 또다시 설명하고 대출만기 연장을 부탁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언제나 안된다는 말 뿐이다.
A사는 어쩔 수 없이 제2금융권쪽을 공략하기로 했지만 최근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건설업에 대한 대출을 제한하고 있어 큰 기대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 부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하더라도 소규모밖에 안돼 이달말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을 막을 방도가 없다"며 "또 다시 사채쪽으로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최근 건설업계는 다음달 금융권의 건설업 신용등급 재조정을 앞두고 있어 벌집 쑤셔놓은 분위기다.
더구나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돌고 있는4~5개 건설사 퇴출설이 기정 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은행들이 건설회사들에게는 빗장문을 꽉 걸어 잠그고 있다.
제1금융권뿐 아니라 제2금융권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있어 일부 건설사들은 사채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업계의 PF대출 규모는 82조4256억원으로 연체율은 6.37%에 이른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규모는 40~5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회사채도 연말까지 7조원 정도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전국 새아파트 입주율은 최악의 상황이다. 부동산114 조사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올 1월 사이에 입주가 시작된 전국 25곳 80여개 단지 입주율이 70% 미만으로 나타났다.
입주가 안돼 잔금이 들어오지 않은 아파트 수는 전체적으로 파악도 안되는 상황이다. 전국에서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만 따진다해도 지난 1월말 기준 4만8469가구다. 평균 분양가를 3억원으로 잡을 경우 14조5407억원 규모다. 준공전 미분양까지 포함할 경우 전국에서 주인을 못찾고 있는 아파트는 11만9039가구로 금액으로는 약 35조7117억원에 이른다.
아파트 건설사업을 주로 해온 건설업체의 어려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설사들은 일거리 자체가 없어 월급이 제 때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B건설사 주택영업팀의 경우 직원 20여명이 아예 손을 놓고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PF대출도 막혀 있어 주택 개발사업은 접은 지 이미 오래인데다 재건축·재개발 수주는 대형건설사들의 전쟁터로 전락해 중견건설사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지난해부터는 아파트 공공공사 수주쪽으로 고개를 들려 입찰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 곳도 저가낙찰 폐단이 심해 손해만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B사 주택영업팀장은 "아파트 공사 입찰도 공공공사는 저가경쟁이 심해 사업을 따내도 회사에서 반기지 않을 정도"라며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매번 강조하지만 건설사들에게는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js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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