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영업과 해외 확대, 주택영업 축소"
국내 건설사의 새해 출사표는 입을 맞춘 듯 대동소이했다. 건설사 가운데 주택시장 공략에 주력하겠다는 기업은 손에 꼽는다. H사 등 주택주력사는 올해 핵심역량을 공공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미분양누적으로 신규 분양시장에서 일정 거리를 둔 중견 건설사인 D건설은 지난해 4대강 턴키에 도전, 천신만고 끝에 수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예산대비 낙찰률은 50.24%를 기록했다. 턴키사상 최저치다.
공공의 비중을 높여 유동성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건설사는 그러나 공공에서 치열한 출혈경쟁으로 시름에 겨워한다. 반복의 악순환이다. 게다가 민간의 주요 먹거리인 재개발과 재건축시장에서는 대형 상위사 간 저가 수주전으로 중견 건설사는 설 땅이 없다.
서울지역의 재개발 현장에서 과열 덤핑경쟁은 이젠 일상사가 됐다. 장위 뉴타운에서 작년 말 상위 건설사가 조합원에 제시한 3.3㎡(평)당 건축비는 350만원대. 불과 5개월 전에 비해 20만원 이상 낮췄다. 국토부의 표준건축비에 무려 평당 100만원 이상 낮은 가격이다. 적자시공이 불 보듯 뻔하다. 상위건설사 간 수주전이 이러다 보니 재개발과 재건축시장에서 중견 건설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만 간다.
누적 미분양으로 금융권의 PF의 상환독촉이 날로 심화하는 상황에서 중견건설사가 택할 수 있은 길은 공공공사 수주. 그러나 이 또한 여의치 못하다. 빠듯한 설계금액에 적자시공을 유도하는 발주시스템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입찰이 진행된 경남 진주산업대학교 종합교육관 신축공사. 입찰 마지막 몇 분을 남겨놓고 경쟁사 간 눈치작전이 치열하게 펼쳐졌지만 실제 신청을 한 회사는 4개 업체에 그쳤다. 지난 1월 6일 이뤄진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에는 8개사가 신청했었다.
현장 연명차원에서 적자시공을 감내키로 하고 막판까지 참여를 저울질했던 것이다. 최근 주택사업 부진 등으로 먹거리가 크게 줄어들자 건설사들이 공공공사로 몰려들고 있어서다. 먹거리가 없어 채산성악화를 감수하더라도 공사를 따내야 하는 게 대한민국 건설업계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주택사업 왜 어렵나
최근 건설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주택사업의 어려움 때문이다. 전체 사업포트폴리오에서 주택분야 비중이 가장 많던 건설사들이 부동산시장 침체로 사업이 어려워지자 재무구조까지 부실해진 탓이다.
주택사업이 어려워진 것은 사회 인구구조의 변화, 정부의 규제확대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가족구조의 변화로 4인 핵가족 중심에서 1~2인 가구가 크게 늘면서 중대형 주택 수요가 줄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중대형에 비해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는 중소형을 지어봐야 남는 것이 없다. 주택건설사업을 줄이거나 접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마저 미분양이 누적돼 간다. 주택업계의 전체 금융조달 PF 가운데 24조원이 넘는 차입금이 연내 상환돼야 한다. 부실의 뇌관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집값 상승을 막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도 주택사업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또 다른 이유다.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진 분양가상한제가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강제로 분양가를 조정하는 상한제 아래서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없다는 게 건설사들의 주장이다.
결국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한 밀어내기 분양으로 쌓인 미분양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소진을 하지 못한 채 건설사 부실로 이어졌다.
정부의 집값 안정 목표는 여전히 건설사에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재고주택에 대해 총부채상환비율(DTI)를 50~60%(투기지역 40%)로 제한했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50% 규제를 감행했다.
이는 주택매매를 제한했고, 신규분양주택으로의 갈아타기 수요도 막는 결과를 가져와 주택산업을 더 힘겹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무리한 저가경쟁..출혈만 남겨
결국 건설사들은 사업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추진, 주택사업 비중을 크게 줄이고 공공공사 수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부가 건설지원 및 일자리창출이라는 명분으로 지난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확대하면서 공공공사는 새로운 먹거리고 부각됐다.
그러나 올해 SOC 예산은 다시 예년수준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건설사 입장에서는 공공공사가 주택사업보다 안정적이다보니 사업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는 저가낙찰, 재무구조 악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단적인 예가 4대강 사업이다. 최근 4대강 살리기 사업의 2차 턴키 공사 낙찰률은 50%대로 떨어져 건설사들의 출혈경쟁만 커진 상황이다.
◇해외사업 '무조건 따고보자'..발목잡아
건설사들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일환으로 해외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동지역이 최근 몇 년 사이 도로, 신도시 등 건설공사 물량이 풍부해지자 너도나도 이 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수주건수 잡기는 또다시 건설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기업신용등급 'D급' 판정을 받아 퇴출위기에 놓인 성원건설이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지난해 수주한 2조원 규모 리비아 토브룩 신도시에 대한 보증서 발급이 수출보험공사로부터 거부돼 선수금 입금이 지연되면서부터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너무 무리한 수주욕심이 위기를 좌초한 셈이다. 이는 성원건설뿐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 해외건설수주액이 600억 달러까지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해외에서 국내 건설사 간 출혈 경쟁을 통한 저가수주로 손해를 보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동지역을 비롯해 해외건설수주 물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더블딥 현상 및 원자재 값 앙등 우려도 있다"며 "무리한 사업 확장과 출혈 수주는 해외사업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js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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