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의 혁신 성과를 나타내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특허 건수다. 특허는 꾸준한 연구개발(R&D)의 산물로 막대한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때문에 금융위기로 불거진 경기침체는 기업들의 R&D 투자를 제한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2008년 기업들의 특허 신청 건수가 1년 전에 비해 2.3% 줄었다. 미국에서 특허 신청 건수가 줄기는 1996년 이후 13년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R&D 투자 고삐를 풀지 않은 기업들도 있다. 투자한 만큼 보상이 뒤따른다고 확신한 기업들이다. 확신은 적중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특허 취득건수 상위기업들이 투자 규모에 걸맞은 수익을 낸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17일(현지시간) 미 특허정보 서비스업체인 IFI페이턴트인텔리전스의 미 특허상표청(USPTO) 자료 분석 결과를 인용, 지난해 특허 취득 건수 상위 10대 미국 기업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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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연 평균 60억 달러를 R&D 부문에 투자하고 있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IBM은 지난해 58억 달러를 R&D 부문에 썼다. 같은해 전체 매출의 6%에 해당하는 액수다.
특허 한 건당 평균 27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투하자본수익률(ROIC)은 28.5%에 달했다. 경쟁사인 인텔과 삼성의 ROIC가 10% 안팎이고 파나소닉과 도시바는 마이너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 500기업과 정보기술(IT)업계 평균도 9%대에 불과하다.
2위는 마이크로소프트(MS)로 지난해 미국에서 2906건의 특허를 따냈다. 건수로는 IBM에 밀렸지만 특허당 수익(560만 달러)과 ROIC(35.7%) 면에서는 IBM을 압도했다. 양보다 질을 추구한 결과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최근 특허 가치 면에서 MS를 미국 기업 가운데 최고로 꼽고 IBM은 삼성 캐논 휴렛팩커드(HP) 인텔보다 못한 8위로 평가했다.
이어 인텔이 1537건으로 3위에 올랐다. 인텔은 특허 하나로 2880만 달러의 수익을 냈고 자본 대비 10.3%의 수익을 내고 있다. 포브스는 인텔이 컴퓨터 수요 감소로 지난 2년간 8%가 넘는 매출 감소를 기록하고도 상당한 혁신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HP와 제너럴일렉트릭(GE)이 뒤따라 4ㆍ5위를 차지했다. HP와 GE는 지난해 각각 979, 966건의 특허를 확보했다. HP는 특허당 630만 달러를 거둬들였지만 GE는 무려 113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10대 기업 가운데 최대 실적이다.
최근 금융공학 관련 특허가 주를 이뤘지만 친환경 에너지와 가전, 의료기기 부문에 대한 혁신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은 결과다. HP와 GE의 ROIC는 각각 14.3%, 3.5%다.
이밖에 마이크론테크놀로지(특허 건수 966건ㆍ특허당 수익 -100만 달러) 시스코시스템스(9913건ㆍ660만 달러) 브로드컴(714건ㆍ10만 달러) 허니웰(655건ㆍ330만 달러) 텍사스인스트루먼트(652건ㆍ230만 달러) 등이 연이어 10위권에 들었다.
포브스는 전통적으로 특허 수익 비중이 높은 엑손모빌과 다우케미컬 등 석유화학기업과 화이자, 머크와 같은 제약기업이 순위에 들지 못한 것은 치열해진 IT업계의 특허경쟁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IT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허경쟁이 실질적인 기업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변화무쌍한 IT업계에서 한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신기술이 제약기업이 개발한 신약보다 생명력이 더 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IT기업 시스코시스템스의 마크 챈들러 고문도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서 "건수 기준 특허 경쟁은 기업에 득이 될 게 없다"며 "특허를 많이 보유하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특허를 많이 보유한 기업일 수록 이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시스코는 4년전 업계에 새 지평을 열 수 있을 만한 기술적 진보에 대해서만 특허를 신청하는 쪽으로 특허 전략을 전환했다. 그 결과 수년 전 연간 1000건에 달했던 시스코의 특허 신청 건수는 최근 700건대로 줄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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