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은행권 사외이사 제도 개편 작업이 일단락됐다.
4대 금융지주회사 가운데 3곳이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으며 우리금융지주는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그대로 겸직하는 대신 선임사외이사를 둬 견제 기능을 수행케 했다.
새로 사외이사로 뽑히거나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된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KB금융지주는 이경재 전 기업은행장을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고, 하나금융지주는 김각영 전 검찰총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뽑았다.
그 동안 거수기 역할에 머물렀던 이사회가 경영진에 대한 견제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영남 이지디지털 대표가 KB금융 출범 후 첫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되고, 이에 앞서 신한금융지주의 전성빈 사외이사가 금융권 최초로 여성 이사회 의장이 되면서 남성 위주로 운영돼 온 이사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겉으로는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가 제시한 사외이사 모범규준을 충실히 반영한 모양새다. 오히려 이사회 구조는 물론 이사진 구성 비율까지 붕어빵처럼 닮은 꼴이 돼 버렸다.
문제는 회사별로 천차만별인 이해관계들을 같은 모양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무릇 좋은 지배구조란 개별 회사들이 처한 상황과 미래 비전을 감안해 스스로 결정한 것이어야 한다. 정답이 없는 사안에 대해 획일적인 틀을 강요했으니 우려가 되는 것이다.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분리한다고 저절로 견제 기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4대 금융지주회사의 이사회 의장 임기는 1년이다. 벌써부터 사외이사들이 1년씩 돌아가며 맡는 이사회 의장이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관치 논란이 벌어질 만큼 금융당국의 입김이 강력한 상황에서 이사회가 외압을 충분히 막아낼 만한 역량을 갖췄는지도 미지수다.
금융회사 이사로 선임되려면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실제로 많은 인사들이 사외이사 인선 과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사회에서 의장으로 추천되고도 당국의 눈치를 보는 자리가 싫다며 고사한 인물이 있을 정도다.
기존 사외이사 제도에 폐단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새 제도가 완벽하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형식적인 측면보다는 어떻게 운용하는지가 더 관건이다.
올해는 금융위기를 딛고 새롭게 출발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 금융회사 경영진과 이사진의 유착 의혹, 금융당국의 관치 회귀 등에 대한 논란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
아무쪼록 새로 진용을 갖춘 이사진이 운용의 묘를 발휘해 내부 경영진에 대한 견제력과 외압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하면서 재도약에 힘을 보태기를 바란다.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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