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에 비유하면 이건희 회장은 세종대왕과 많은 부분이 비슷합니다." 사견을 전제로 삼성의 한 임원이 한 말이다. 그는 "태종이 세자였던 장남 양녕을 폐하고 셋째아들인 충녕을 세자에 봉한 것과 이병철 선대 회장이 이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만 봐도 유사점이 많다"고 부언했다.
자칫 이 회장에 대한 과잉충성으로 오해를 살만한 발언이다. 하지만 조선과 삼성을 하나의 조직으로 생각한다면 이 역시 과하지 않은 비교라는 설명이다.
세종대왕은 영토를 넓혀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현재의 국경을 완성했다. 과학 기술 발명품도 40여개에 달한다. 과학자들에 대한 대우도 높였다. 관노 출신인 장영실은 종4품 벼슬을 받았다. 이 밖에도 이순지·이천·정인지 등 과학 인재들을 중용했다. 세종대왕 시절인 15세기 전반 조선은 서유럽은 물론 아랍과 중국을 능가하는 과학기술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글 창제는 세종대왕의 가장 큰 공적이다.
이 회장 역시 삼성의 발전을 이끌었다. 취임 이후 삼성은 세계로 그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가전제품은 물론 휴대폰·조선·디스플레이·2차전지 등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췄다. 재무 출신 위주의 조직은 이 회장 시대에 이르러 실무 기술진 중심으로 이동했다. 이윤우·진대제·황창규 등 수많은 연구진들이 삼성을 이끌었다. 지금도 윤부근·권오현·장원기·신종균 등 연구직 출신들이 삼성의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 주요 사업부를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의 가장 큰 업적은 반도체다. 이 회장은 선대 회장 시절에도 반도체 사업을 주도했다.
대외적으로는 X파일과 비자금 파문 등 굵직한 진통을 겪었지만 적어도 삼성이라는 조직을 성장시키고 반석 위에 세운 것이 이 회장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역으로 세종대왕 이후 역사를 감안하면 삼성은 이건희 이후에 대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동서양 수많은 왕조들 역시 성군 치하 이후 국가의 기운이 쇠퇴했다. 기업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 경제지 포춘(Fortune)이 매년 선정한 글로벌 100대 기업 가운데 최근 30년 동안 자리를 지킨 기업은 32개에 불과하다. 최고경영진이 교체되고 오너가 대를 물리면서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기업들이 변방으로 밀리고 있는 것.
삼성의 경영권은 장남인 이재용 부사장에게 승계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경영 승계를 둘러싼 3세들 사이의 경쟁을 예상하지만 삼성의 입장은 단호하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사장으로의 경영 승계를 위한 지분은 물론 조직 장악이 상당 부분 마무리 됐다"며 "유교적 이념 기반을 갖고 있는 삼성에서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리고 설명했다.
세종대왕 역시 후계자로 적자인 문종을 선택했다. 병약한 문종보다는 수양대군(세조)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적자승계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이후 조선은 왕위를 둘러싼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조선의 기운도 세종대왕 이후 크게 떨어졌다.
때문에 이 부사장의 경영 승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삼성이 100년 기업, 그 이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수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부사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년 가까이 삼성전자에 적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차기 삼성을 맡길 만한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재용 불가론'의 핵심이다.
이 부사장이 독자적인 경영을 펼친 것은 2000년 e삼성 사업이 유일하다. 하지만 e삼성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14개에 달하는 e삼성 관련사 들은 삼성 계열사들에 편입되거나 해체됐다. 이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부사장의 발목을 잡는 실패로 회자되고 있다. 이부진 전무와 이서현 전무가 각각 맡은 분야에서 능력을 보이며 맡은 계열사의 발전을 이끌어 온 것과 대조를 이룬 다는 것.
하지만 이 부사장은 삼성전자 안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다. S-LCD에서 등기이사직을 맡으며 삼성전자가 LCD와 이를 기반으로 한 TV 사업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데 힘을 보탰다. 최고고객책임자(CCO)로 해외 주요 거래선들을 담당해왔다.
비자금 파문 이후에는 해외를 돌며 거래선과의 신뢰관계를 돈독히 했다. 최근 신흥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신수종 사업 발굴도 활발히 나서고 있다. 삼성에 정통한 인사들에 따르면 최근 삼성의 새로운 주력 사업으로 부상한 LED 역시 이 부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이 부사장의 움직임은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e삼성 실패 이후 삼성이 이 부사장이 책임지는 모양새를 꺼렸기 때문에 이 부사장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S-LCD나 LED 사업은 초창기 실패 위험이 있었으며 만일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면 이를 주도한 이 부사장에 대한 평가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사장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사에서 이 부사장은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직을 맡았다. 삼성전자 대표이사인 최지성 사장을 보좌하는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이 부사장의 능력을 입증하기에는 그 책임과 권한이 적다. 최근 이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입증 가능성은 더욱 줄었다.
지난 인사에서 이 부사장이 삼성LED·중국삼성 등 계열사 사장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이를 통해 독자적인 책임을 갖는 위치에서 경영능력을 입증할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아울러 조직을 이끌면서 향후 삼성이라는 큰 조직을 이끌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은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검증된 회사와 최고경영진 조합을 통해 실패 위험을 줄였다.
태종은 적자인 양녕의 아들을 세자에 책봉하려 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이를 반대하고 어진 이를 세자로 책봉할 것을 권했다. 그가 바로 충녕, 곧 세종대왕이다. 조선시대 제왕은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사대부들의 의견과 명분을 존중해야 했다.
기업 역시 오너의 뜻이 중요하지만 경영권 승계에는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국민의 여론도 상당 부분 중요하다. 삼성은 여전히 매출의 30% 상당을 국내에서 창출한다. 조직원의 국적도 국내 출신이 90%를 상회한다.
이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이 부사장은 '어진 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 부사장의 역량을 입증할 수 있는 역할을 맡기는데 주저하는 모양새다.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은 기아자동차 디자인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그 결과 경영 승계의 당위성을 확보했다.
재계 관계자는 "온실 속 화초 식의 경력 관리보다는 이 부사장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맡아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라며 "아울러 삼성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능력을 갖춘 인재가 수장이 돼야 하는 만큼 검증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주경제 특별취재팀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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