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디지털전쟁... 이건희와 스티브잡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0-04-20 13:33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아주경제 박정규 이사겸 편집국장) 요즘 전 세계 IT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인물. IT기기들이 기업들의 매출 확대 보다는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진화한다고 믿게 해 주고 있는 인물이 바로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다.

경영전문가들은 그가 ‘소비자들의 눈 높이를 정확히 맞추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IT업계의 수많은 경영자들이 큰 성공을 거두고도 소비자들과의 눈 높이를 맞추는데 실패, 기업의 쇠락을 초래하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들의 새로운 욕구에 반 발짝씩 앞서가며 시장을 리드하는 절묘한 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할 때도 그랬지만, 이달 초 미국의 애플 제품 전문매장에서 아이패드가 첫 출시될 때 침낭과 텐트를 치고 밤새 줄을 서 기다려온 고객들이 제품을 받고 환호성을 치는 광경을 전 세계 CEO들은 부러움에 가득찬 눈길로 지켜봐야 했다. 소비자들이 밤샘하며 기다려 구입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모든 CEO들의 꿈일 수 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는 지금까지 신제품 기능을 소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던 프리젠테이션 개념도 바꿔놓았다. 전 세계 소비자들은 그의 프리젠테이션이 예고될 때부터 기대감에 부푼다. 잡스는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청바지에 터틀넥 티, 테니스화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한껏 고조된 궁금증들에 대한 해답을 던진다. 

◆ 스마트폰 주도권 놓지 않는 스티브잡스

최근 새 아이폰 운영체제인 ‘OS 4’를 공개한 스티브잡스는 오는 6월께 차세대 아이폰 4G를 내놓기로 하는 등 IT시장의 주도권을 넘볼 틈을 주지 않겠다는 기세다.  

스티브잡스는 사업과 건강 양면에서 지옥의 상황에까지 떨어졌다가 귀환한 철저한 '잡초CEO'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을 중퇴한 그는 20세 때 차고에서 스티브 우즈니엑과 애플을 창업한다. 10년 후 400명의 직원에 20억달러의 매출을 내는 기업으로 키웠지만 회사에서 쫓겨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10여년 후 애플 CEO로 복귀했지만, 또 다른 인생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1년여 치료 끝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스티브잡스는 ‘아이폰 신화’를 써나가며 세계 IT업계를 초긴장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스티브잡스는 올 1월 태블릿PC 발표회에서 “이제 애플은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노키아, 삼성 같은 회사와 경쟁하는 모바일회사”라고 선전포고했다. 

공교롭게도 애플이 스마트폰으로 초고속 성장한 기간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퇴진해 있던 기간이었다. 2008년 4월 최고경영자에서 이건희 회장이 물러난 이후 그룹 운영을 떠맡은 삼성 사장단협의회는 미 대륙에서부터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감조차 잡지 못했다.  

스티브잡스의 ‘전쟁 선언’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이건희 회장이 지난달 복귀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물론 삼성전자가 휴대폰만을 만드는 회사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반도체-가전-IT영역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뤄 한쪽 매출이 기울더라도 다른 부문에서 커버해주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앞으로 10년 후면 현재 삼성의 주력제품이 모두 바뀔 수 있다”고 역설했듯이 IT시장의 변혁 방향과 속도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구글, MS를 비롯한 세계적 기업들은 사활을 걸고 모바일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당분간 세계IT산업의 ‘적벽대전’이 모바일, 스마트폰 영역에서 펼쳐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현재 세계시장을 뒤흔드는 애플의 팽창은 삼성에게 마이너스 효과만 있는 게 아니다. 삼성이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주력부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폰 한 대에 들어가는 삼성과 계열사 부품은 23달러 어치에 불과하다. 특히 부품업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이익 구조도 문제다. 지난해 상반기 애플은 50억 달러 매출에 20억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익률이 무려 40%에 이른다. 반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10.5%에 불과했다. 삼성이 독자 브랜드력을 높이면서 B2C 시장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2009년 현재 세계 스마트폰시장에서 노키아가 38.8%, 림이 19.7%, 애플이 14.4%를 점유했지만 삼성전자는 3.7%에 그쳤다. 북미 시장에서 대혁명이 일고 있는데, 하드웨어 기술만 높이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이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 영원한 승자는 없다 

삼성의 부진은 정부의 ‘IT 쇄국주의’ 정책도 한 몫을 했다. 아이폰이 한국에 공습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철저하게 방어해주고 있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국내시장에서 얻는 달콤한‘꿀 맛’에 도취돼 세계시장 경쟁력을 높이는데 등한히 했던 것이다. 

애플과 삼성을 놓고 볼 때 스마트폰 1라운드는 애플이 판정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산업이 그래왔듯 ‘영원한 승자’는 있을 수 없다.

다음 2라운드 승리를 위해 삼성은 이번 모바일 혁명의 성격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금세기 스마트폰 혁명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창조적 소프트웨어 혁명이다. 반도체나 피처폰, 가전제품은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최고 품질로 진화를 거듭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상부의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따르는‘톱 다운(Top-Down)’방식에 익숙한 삼성 문화로는 이 혁명에서 이길 수 없다. 젊은 직원, 외부 모니터들의 창조적, 신축적 사고와 창의성을 토대로 한 ‘바톰 업(Bottom-Up)’방식의 소프트웨어 혁명이 삼성 내부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문화 혁신과 함께 삼성의 경영진과 연구진은 전 세계 소비자들이 밤 새 줄 서서 기다리며 환호할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국민들은 숱한 시련을 딛고 질경영, 품질 제일주의로 세계시장을 장악했던 이건희 회장과 삼성이 이번 모바일산업 위기를 극적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전노장(百戰老將)의 귀환으로‘삼성이 반드시 해낼 것’이라 믿고 있다.  
skyjk@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