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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의 트렌드브리핑] '천안함 침몰' 그리고 전운(戰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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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4-2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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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기 두렵다. '전쟁'이라는 낱말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으로 백일하에 드러난다면,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정. 가정조차 외면하고 싶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이건 정부건, 약간의 패닉 상태를 겪는 듯한 작금의 상황. 나이 사십 넘긴 사람들도 막걸리 집에서 북한을 성토하기는커녕 지하벙커에 들어간 대통령과 내각, 원인 파악을 즉시 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 심지어 살아 돌아 온 장교들을 대놓고 욕해대는 이상한 분위기.

유족들의 애통함과 비통함을 절대적 상위 가치로 두고 '생떼 같은 자식들'을 죽인 잘못을 파헤치기 위해 기를 쓰는 대다수 신문과 방송 종사자들.

'전사(戰死)'일 가능성도 있으니 조금 담담하게, 전략적으로 지켜보자는 말은 "그게 무슨 소리냐.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네 자식이 그런 일 당했다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정서에 파묻히는 시중의 분위기.

그 모든 이상한 분위기 위에 얹어지는 '미(美) 잠수정 파괴설'과 '천안함 악용설'. 무엇이 옳은지 어떤 게 진실인지? 뭉게구름처럼 번지는 회의론.

이성은 실종되고 '압도적인 슬픔'의 지배와 무기력감의 팽배.

후방의 이런 상태 속에서 '전쟁'운운 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불 보듯 뻔한 패전의 전조마저 느껴져 불길하다. 이 와중에 북한은 대대적인 군부 승진 인사를 단행하고 60억 원 어치나 폭죽 놀이를 즐겼다니, 혹시 미리 승전을 자축함인가?

두렵다. 전쟁이라는 낱말은. 그 어둡고 복잡한 이미지, 전쟁영화에서 구경했던 쿵쾅거리는 포성, 쌕쌕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 전장의 참상. 차들이 멈춰서고 싸이렌 소리 울려 퍼지는 거리. 상상만 해도 싫다. 게다가 패전이라도 하면, 어쩔거냐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점심 시간에 어디 가서 뭐 맛있는 거 찾아 먹을까? 주말엔 아이들 데리고 어디 좋다는 체험학습장 나들이를 갈까? 고민하는 범부들. '천안함'사건은 댓글, 펌글로 한 시간 정도 떼우고 짐승돌의 초콜릿 근육과 월드스타라는 '비'의 컴백, 이효리의 힙합쪼 신곡 소식에 온 종일 눈과 귀를 열어 두는 젊은이들. 지방선거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한 자리 차지하고 봐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장년들. 시절은 한탄스럽지만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무슨 힘이 있나?" 퀭한 눈으로 하루 하루 지나가는 노인들.

이런 국민들에게 '전쟁'이라니,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니. 심지어 북한의 강경파 군부 일부의 소행일 거라는 추측도 부담스러운 지경이다. 아예 북한이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 났으면 좋으련만... 정말 북한의 김정일 휘하 군부가 권력 내부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저지른 도발이라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뭘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전쟁을 안 할 수도 없고 하기는 싫고. 더구나 '패전'이 두려울 정도인 작금의 이상한 국민 정서, 시중의 분위기 아래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헷갈리고 망설여지고 주춤거려지고 겁나고 두렵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쌓아 올려 여기까지 온 배부른 일상인데, 어떻게 장만한 친환경 아파트 한 켠에서 평화롭게 쪼이는 한 낮의 햇볕인데. 종류별로 빚은 쌀 막걸리 감칠맛을 전부 맛보는 나날이 즐거운 이 밤을, 이 안온함을 포기하라고? 정말, 전쟁을 하자고?

'전가의 보도' 유엔(UN)이 있기는 하다. 유엔 안보리 결의로 다각도의 제재가 행해진다면, 시간을 끌며 전쟁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도 두고 봐야 안다. 안보리 결의를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북한 군부가 간주한다면? 부디 그러지 않아주면 좋으련만. 잃을 게 없다는 저들이니까, 이판사판 공사판 전쟁에 목숨을 걸고 나올 수도 있는 노릇. 결국 상황에 쫒겨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전쟁에 우리가 내 몰리게 된다면...

우리 모두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 정부를 믿고 따르며 전시 비상계획에 따라 차분히 행동할 것인가? 다치면 나와 내 가족만 손해니 얼른 비행기 타고 외국이나 제주도로 내뺄 것인가? 아니면 정부와 대통령과 군 지휘부의 무능을 성토하며 잔치판 북한 군부의 심리전에 도우미 노릇을 할 것인가?

이 중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천안함에서 산화한 젊은 장병들이 묻고 있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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