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회의 글로벌인사이트] BP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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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5-0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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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미국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태가 환경 대재앙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0일 석유시추시설 딥워터호라이즌이 폭발한 뒤 매일 21만갤런(약 80만ℓ) 이상의 원유가 멕시코만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유 유출로 형성된 기름띠가 대서양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하루 원유 유출량이 600만갤런에 달할 수 있다는 경고는 아찔할 정도다.

역설적인 것은 대규모 환경파괴를 유발한 영국 정유사 BP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친환경적인 정유사로 인식돼 왔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BP를 친환경 기업으로 느끼게 된 데는 광고 캠페인 덕이 컸다. BP는 2000년 '브리티시페트롤리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머릿글자인 'BP'를 새 브랜드로 삼았다. 녹색과 노란색을 강조한 햇살 모양의 새 로고는 누가 봐도 친환경적이다. 이때 내세운 슬로건은 '석유를 넘어서(Beyond Petroleum)'였다.

새 단장을 한 만큼 BP는 2억달러를 광고 캠페인에 쏟아부었다. 지난해 미국에서 TV와 라디오 광고를 하는 데 쓴 비용만 1600만달러에 달했다. 그 결과 2007년 한 소비자 조사에서 BP는 정유사 가운데 가장 친환경적인 기업으로 꼽혔다. 같은 해 BP의 '석유를 넘어서' 캠페인은 미국광고협회(AMA)로부터 금상을 수상했다. 브랜드 인지도 역시    2000년 4%에서 2007년 67%로 급등했다. 이번 사태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게 된 BP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그러나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는 '표리부동'한 BP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해 왔지만 '석유를 넘어서'라는 슬로건은 공염불에 불과했던 것이다. BP는 대체에너지 부문 투자규모를 2008년 14억달러에서 지난해 10억달러로 줄였다.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불과 몇주 전에는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태양열발전소를 폐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친환경에너지를 소홀히 한 결과는 매출에도 반영돼 지난 1분기 전체 매출 730억달러 가운데 대체에너지 부문 매출은 1%도 안되는 7억달러에 불과했다.

BP의 '말잔치'는 광고 캠페인에서 그치지 않았다. BP는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들여 미국 정치권에 로비를 벌였다. BP는 "연안 석유시추는 환경에 해를 주지 않으며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는 사이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안전조치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전문가들은 딥워터호라이즌에 원격조종할 수 있는 차단 스위치가 있었다면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유시추시설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 장치를 이용해 수중유정을 닫으면 원유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노르웨이나 브라질 등지와는 달리 차단 스위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미 정부 내에서는 2003년 이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BP를 비롯한 정유사들이 50만달러의 비용부담을 이유로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 수습 비용은 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기업들이 브랜드 이미지 광고에 거액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철학 없이,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이미지 전환은 역효과를 부르게 마련이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기업 이미지는 돈보다는 시간을 투자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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