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란 게 결국은 양철통 아닌가. 엔진에 양철통 올려 놓고 바퀴 달고 핸들 달면 되는 거 아니냔 말이야. 그러니까 결국은 껍데기가 관건이란 말이야. 껍데기를 보기 좋게 만들어야 돼. 그래야 소비자들이 좋아하게 돼 있어. (중략)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탈이야, 탈.”
정주영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 그를 보좌했던 박정웅 상무가 들었던 이야기다. 박 상무는 지난 2007년 회고록을 통해 이 일화를 소개하며 정주영의 ‘단순한 직관력’에 주목한다.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직접 자동차를 수리하고 개조했던 ‘자동차 기술자’ 정주영이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를 한갓 ‘양철통’으로 단순화 한 것은, 소비자가 디자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당시 트렌드를 한 발 앞서 찾아낸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1985년, 현대 신차 발표회장에서. (사진=정주영 박물관)
◆“세부보다는 핵심을 파악해라”= 정주영이 건설 사업으로 한창 잘 나가던 1960년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었다. 그는 자동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걸 단순한 직관력으로 예감한 것이다.
이유는 또 있다. 공사가 끝나야 대금을 받는 어음 장사인 건설을 하다 보니 100% 현금 장사인 자동차 판매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1940년대 자동차 수리업을 하던 중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건설에 눈 뜬 것 처럼. 윤준모 당시 자동차공업협회 이사장의 증언이다.
정주영에게 자동차는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사업, 건설보다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사업, 거기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업이었다. 나머지 자금, 기술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이제껏 그랬듯 자금이야 끌어 오면 되는 거고, 기술은 연마하면 될 일이었다.
◆“돌다리도 건너며 두들겨 봐라”= 정주영이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또 다른 특징은 일단 결정을 봤으면 즉시 추진한다는 점이다. 그의 별명이 ‘불도저’란 게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시작한 후 부족한 점은 보완해 나가는 방식을 좋아했다.
그는 생전 대학(大學)의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이란 구절을 좋아했다. ‘사람이 지식으로 올바른 앎에 이르자면 사물에 직접 부딪혀 그 속에 있는 가치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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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스 신차 발표회에서. 오른쪽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
제네럴모터스, 포드 등 미국 빅3, 도요타, 혼다 등 일본 6개사, 벤츠, 폴크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 회사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가 현재 현대기아차가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꼽힌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 지 자못 궁금하다. 아마도 “내가 뭐라 그랬어? 해 보기나 했어?”라고 사람들에게 호통치며 내심 기뻐하지 않을까.
(아주경제 김형욱·김병용·이정화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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