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청첩장이 날라 왔다. 평소에 가깝게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혼사를 한다는 데 모른 체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토요일 황금 같은 오후 2시에 가장 교통이 복잡한 곳에서 결혼식을 치른다는데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그러나 그 고민도 잠깐 청첩장 밑줄에 ‘연락처: 234-303-223-45325 한신은행 예금주 아무개‘이 적혀 있는 걸 발견하고 쾌재를 부른다.
혼주가 미리 알아서 바쁘신 분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은행 통장에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다. 사랑의 리퀘스트만 ARS전화로 모금하는 하는 것이 아니고 걸인도 전화를 모금하는 세상이 눈앞에 보인다. 앞으론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여 예를 다 하지 못하게 되어도 별도의 연락 계좌번호로 예의를 전할 수 있게 된다. 하여튼 현금이 직접 오가지 않고 디지털 숫자가 대신 오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10년 1분기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 총 거래액이 5조 9060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전체 소매 판매액의 9%를 차지하는 규모로 2007년 6.9%, 2008년 7.5%, 2009년 8.2%로 지속적으로 온라인 쇼핑이 확대 추세에 있음을 보인다. 사이버쇼핑 거래의 지불결제수단은 카드결재가 69.9%를 차지해 압도적이었으며, 계좌이체 26.3%, 전자화폐 0.5%로 나타났다. 온라인 쇼핑의 결제 수단은 당연히 무형의 화폐지만 실물 시장에서의 거래조차도 이젠 신용카드, 직불카드, 체크카드 등 현금을 지폐가 아닌 디지털 숫자로 전달하는 방식이 통용되고 있다.
요즘엔 자녀들의 용돈은 계좌에 넣어 주고 직불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하도록 하는 게 보통이다. 학생증. 주민등록증. 사원증 등의 신분증 기능을 함께 하는 전자화폐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소액은 교통카드나 휴대폰 결제방식을 이용하는 데 인터넷으로 충전하면 교통기관이나 자판기 이용에 불편이 없다. 이젠 물건을 사도 에누리는 포인트 점수로 나눠 주고 누적된 포인트는 다시 현금과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사용되지 않는 신용카드 포인트 금액을 합치면 1조 4천억 원이 된다고 한다.
이 중 매년 시효 소멸되는 금액이 1,100억 원 정도나 된다니 에누리 푼돈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방송사에선 이 소멸되는 포인트를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자는 캠페인이 한창이다. 주변에서 차츰 잔돈 화폐거래가 줄어들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지폐나 동전 대신에 디지털 숫자가 모든 물건들의 교환수단이 되고 있다.
금액이 크면 아예 온라인 송금방식이 자주 이용된다. 최근의 부동산 거래에서 수표로 받아 추심하기 보다는 온라인 입금으로 깔끔히 해치운다. 워낙 금융시스템이 전산화가 잘 되어 은행에서 007가방에 현금을 세어 들고 나가면 무조건 범죄를 기도하는 자로 의심 받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부터 온라인 금융지원시스템이 모바일화 되고 있다. 모든 은행업무가 이젠 스마트폰으로 가능해 졌다. 은행 입출금은 물론이고 적금, 소액대출, 펀드거래, 주식거래, 보험거래 등도 가능하다. 모바일 디지털금융시대인 것이다.
화폐는 물품을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국가가 보증해 주는 수단이다. 따라서 화폐는 해당 국가의 시대적 상징물이다. 예술과 역사를 담은 기념물이며 나아가 화폐 자체의 모양과 재질이 역사성을 가지고 있어 시대를 잘 표현하는 역사 유물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상징물이 점차 퇴역하고 단지 교환가치만이 의미를 갖게 되는 디지털 화폐시대가 된 것이다. 화폐의 핵심가치인 국가의 역사성이나 예술성이 의미를 잃게 되면 어느 시점인가 국가 간 통화기준이 통일되는 시기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디지털 화폐시대의 최종착지는 글로벌 통합화폐 시스템이 될 것이다.
미래탐험연구소장
공학박사, 이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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