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면서 남몰래 고민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직원들이 월드컵에 빠져 자칫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월드컵의 주요 경기 일정은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 기업의 업무시간과 맞물린다.
![]() |
||
영국 기업들은 아예 업무시간 축구 시청 금지령을 내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사무실에서 직원들의 TV 시청을 허용하거나 직원들이 경기를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업무시간을 조정해 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회계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영국 직장인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남성의 절반 이상, 여성은 21%가 업무시간이라도 봐야 할 경기는 보겠다고 답했다.
영국 경영컨설팅업체 차터드매니지먼트인스티튜트(CMI)는 영국 기업들이 이번 월드컵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10억파운드(15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최대 유통체인 월마트의 영국 자회사 아스다(Asda)도 월드컵 모드로 전환한 기업 가운데 하나다. 이 회사는 아예 남아공으로 떠나려는 임직원을 상대로 2주간의 무급 '사파리 휴가'를 주고 있는가 하면 직원들이 임의로 교대시간을 변경하도록 허용하고 휴식시간도 연장했다. 매장에서 판매되는 TV의 채널도 월드컵 경기에 맞춰뒀다.
PwC에서 기후변화 관련 서비스 부문 팀장을 맡고 있는 조나단 그랜트는 팀원들이 오후로 예정돼 있는 잉글랜드의 경기를 볼 수 있도록 출ㆍ퇴근시간을 앞당겼다. 하지만 7명의 팀원 중 세명의 국적이 서로 달라 그는 결국 업무 분담을 새로 하고 업무시간 중 월드컵 중계 시청을 허용해야 했다.
'축구종가'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 기업들도 최근 치솟고 있는 축구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남아공과 멕시코의 개막전은 온라인 스포츠 전문 채널 ESPN3 사상 미국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이 경기는 지난해 역대 최대 시청자를 기록한 남가주대(USC)와 오하이오주립대간 미식축구 경기보다 178% 많은 50만명 이상이 시청했다.
WSJ는 경기가 열린 시간이 미국 동부 기준 오전 10시였던 점을 감안하면 온라인 시청자의 상당수는 직장인이었을 것이라며 이날 뉴욕의 바에는 술을 마시며 축구경기를 보는 직장인들이 차고 넘쳤다고 전했다.
스크린프린팅 전문업체 포니익스프레스프린팅(PXP)은 이날 경기에 앞서 일주일간 초과근무를 한 뒤 개막전 당일에는 회사 문을 닫을 방침이었다. 멕시코계 직원들을 배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지난 9일 갑자기 긴급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밀려 들어 45명 전 직원을 총동원해야 했다. PXP는 직원들이 축구를 보기 위해 병가를 낼 수도 있다고 판단, 작업장과 회의실 내에서 경기를 볼 수 있도록 TV를 설치했다.
제프 헨더슨 PXP 사장은 "직원들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며 "전 직원이 11일에 출근하긴 했지만 작업 능률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스위스계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도 근무시간 중 회의실에서 미국과 스위스가 치르는 월드컵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방침을 정했다. 다만 상사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었다.
한편 중국 광주일보는 14일 중국의 일부 기업들도 월드컵 기간 출근시간을 늦추는 등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의 한 기업은 오전 9시인 출근 시간을 월드컵 기간 오전 10시 30분으로 1시간 30분 늦췄다. 새벽까지 진행되는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느라 잠을 설친 직원들이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무실에는 직원들의 피로 회복을 돕기 위한 음료수를 비치했고 상금을 내걸고 사내 승부 알아맞히기 내기도 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팀인 브라질의 경기는 술집에서 단체 응원전을 펼치면서 시청하고 모든 비용을 회사가 대기로 했다. 이 회사는 파격적인 조치에 '업무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raskol@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