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정은 기자) 사람들이 기업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편견에 치우쳐 비난을 일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은 영웅으로 추앙받고 미국 멕시코만 사태의 책임 당사자인 영국 정유사 BP의 토니 헤이워드 CEO는 악당 취급을 받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맹목의 산물이다.
진보성향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CEO에 대한 맹목적인 추앙이나 비판은 현실을 보는 눈을 가려버릴 수 있다고 경계했다.
줄리 프라우드 영국 맨체스터비즌니스스쿨 교수는 사람들이 CEO 개인에게 주목하는 사이 더 큰 이슈를 간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헤이워드를 강하게 비난하는 동시에 화석 에너지에 대한 인류의 집착이라는 문제에 관해서도 살펴봤어야 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은행가들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프라우드 교수는 미국이나 영국 의회에서 은행가들을 소환해 벌이는 청문회에서는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은행가 개인에 대한 비난만 쇄도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기업이든 국가든 거대한 조직의 성공과 실패는 어느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INSEAD) 교수인 모튼 헨슨, 헤르미니아 이바라, 우어스 파이어 등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CEO의 카리스마나 명성, 비난이 꼭 개인의 성과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전 세계 굴지 기업의 경영인 2000명을 조사했는데 잡스처럼 유명한 이도 있었지만 뛰어난 일솜씨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상당수였다.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사람들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무장한 기업가의 영웅적 측면에 주목해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했던 미국의 '석유왕' 존 록펠러나 빅토리아비누를 만든 로드 레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시장에 혁신적인 제품이나 제조공법을 제시했던 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는 기업가로 명성을 떨쳤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나 '날개 없는 선풍기'를 디자인한 제임스 다이슨 등도 현대 기업가로 혁신성을 두루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가디언은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 기업가는 과거의 기업가처럼 세상에 혁신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저 크고 복잡한 회사를 운영하며 해외진출에 나서고 있는 이들은 '혁신가'라기보다는 '경영자'라고 보는 게 적합하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현대 기업가를 기업의 대명사라거나 기업의 모든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자로 여기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킴 턴불 제임스 크랜필드스쿨오브매니지먼트 교수는 "사람들은 CEO에 대한 종교적 신념을 통해 그가 기업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책임져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CEO가 힘과 용기를 주는 롤모델로 삼는 데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런 신념은 CEO를 영웅이나 마술가로 보게 되는 '판타지'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nvcess@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