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잦아들면서 배드뱅크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부실채권처리를 관(官)에서 민(民)으로 넘겨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국내 배드뱅크 시장은 금융시장 안정과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미명아래 정부가 주도해왔다. 이에 기업들은 부실화한 자산을 헐값에 정부에 넘겨야 하는 억울함을 겪었다. 하지만 한국 금융시장이 과거와 달라졌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도 침착하게 극복하며 달라진 경쟁력을 증명했다. 또 배드뱅크 시장의 독점체제가 기업의 이익을 해치고 효율성과 탄력성이 떨어지는 만큼 민간 중심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이와함께 지난 외환위기 직후에도 이 같은 논의가 사장된 만큼 이번에는 꼭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앞으로 2회에 걸쳐 현재 배드뱅크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할 대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부실화했지만 2~3년 정도 공을 들이면 제값을 회복할 자산을 자산관리공사(캠코)에 넘긴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죠."
시중은행의 부실채권(NPL) 업무 담당자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부실화한 자산을 정부에 헐값에 매각해야 하는 데 대한 성토다.
이 같은 목소리는 캠코의 전신인 성업공사가 설립된 지난 1962년부터 제기돼왔다.
배드뱅크란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이나 채권만을 사들여 이를 정리하고 시장에 되파는 일을 하는 기관이다. 미국·영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회사가 보편화됐으며, 금융의 한 업권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하지만 한국의 배드뱅크 시장은 폐쇄적이고 독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정부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매각 여부를 결정하고, 캠코가 이 자산을 단독으로 매입한다.
때문에 매각 결정에 은행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으며, 가격은 거의 덤핑된 수준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금융권 안팎에서는 배드뱅크 업무를 민간에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부실채권 처리에 시장논리를 적용해 적정가를 찾고, 이를 다시 재투자의 길로 유도해야 한다는 논리다.
전용식 우리금융지주 연구위원은 "국내 NPL 시장은 독점에 가까워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경제적인 측면과 금융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배드뱅크가 민간으로 넘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전 연구위원은 또 "다만 현재 시장가격이 워낙 낮게 형성돼 있어 캠코의 시장참여를 제한하는 등의 시장 매커니즘 형성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배드뱅크 시장의 폐쇄성을 완화하고 적정가격을 찾도록 제도적 보완이 선행돼야 시장의 참여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캠코의 매출과 수익 등을 근거로 따졌을 때 국내 배드뱅크 시장은 연 2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시장에서 캠코가 연간 1000억원 가량의 수익을 올리는 것을 감안하면 수익률은 연 5% 수준. 독점시장에서 경쟁시장으로 구조가 바뀔 경우 수익률은 최소 10%대로 향상될 수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정부가 NPL에 대한 가격 조정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시장 참여자가 없지만 완전 경쟁구도로 바뀌면 수익성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시장을 민간이 주도할 경우 구조조정 전문가를 육성하고, 투자은행(IB) 시장의 활성화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정부주도로 NPL 시장이 정리될 경우 정리가 계획적이며 빠르다는 장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금융위기처럼 시장 상황이 급변하는 경우 시장보다는 정부의 카리스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대외투자자의 불안을 해소에도 정부의 의지나 힘은 필요하다.
전 연구위원은 "시장 참여자가 안심하고 게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정 부분은 관리한다는 액션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ykkim@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