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산업 탈출구는 없나-1] 악소문 시달린 건설사들 "차라리 명단 빨리 공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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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6-2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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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주사업 힘들어지고 자금압박 거세져 구조조정땐 1곳당 381개 협력업체 타격

(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중견건설사 A사 임직원들은 요즘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거의 희망적이었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연장문제를 놓고 최근 주거래은행이 불가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B등급이었던 이 업체는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인 금융권의 신용위험평가 결과에서 C등급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소문에 휩싸였다. 당연히 수주사업이 힘들어지고, 자금압박은 더욱 강해진 상황이다. 임원들은 매일 회의와 은행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에 쫒기지만, 지금으로선 속수무책이다.

이 회사 자금담당 관계자는 "연초부터 몇달 째 안좋은 소문에 시달리고 있어 제대로 된 사업을 못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구조조정 대상 명단을 공개하는게 차리라 낫겠다"고 하소연했다. 

건설업계에 대한 신용위험평가 발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건설업계는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PF 연체율 증가로 저축은행 등 금융계 부실까지 걱정하게 된 금융권은 이번에야 말로 확실한 옥석가리기를 하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17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또다시 강조했다. 주택시장 활성화는 별개라는 얘기다.

◆ 옥석가리기, 이번엔 제대로 될까

구조조정 대상 명단 확정을 앞둔 채권은행들은 지난해보다 더욱 엄정한 잣대로 옥석을 가리겠다는 각오다. 지난해 실시한 1·2차 신용위험평가는 허술했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실제로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간 남양건설은 지난해 A등급을 받았다. 성원건설과 인천대표기업인 진성토건도 B등급으로 분류돼 금융권의 평가에 정확도가 떨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금융권은 이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업현장에 직접 나가 시장조사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채비율이 낮더라도 경영위험이나 활동성 등이 좋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하는 방안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적으로는 재무항목이 60점, 비재무항목이 40점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해외사업, 공공사업 등 사업 전반적 프토폴리오와 PF 관련한 부채수준 등도 평가 대상이다.

전체 점수가 80점 이상이면 A등급, 70점에서 80점 사이는 B등급에 들어간다. 60점 이상~70점 미만은 C등급, 60점 미만은 퇴출대상인 D등급이 된다.

이에 따라 올해 C등급이나 D등급을 받는 건설업체 수는 지난해보다 크게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주거래은행 등이 건설사와의 조율 등으로 신용등급을 높여 이번에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적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근 1차 부도를 맞았던 성지건설이 채권단의 지원으로 부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 떨고 있는 건설사, "지옥행이냐 천국행이냐"

건설업계 위기론에 대다수의 중견 건설업체들은 "우리는 아니다"며 겉으론 태연한 표정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B건설사 한 직원은 "회사에서 직원 2~3명만 모여도 미리 짐을 싸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을 한다"며 "손에 일이 잡히지도 않아, 다들 정부와 금융권의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불안해 하는 곳은 단연 주택전문 건설업체들이다. 전체 사업의 90% 이상을 아파트 등 주택분야에 매진해온 이들은 몇년전부터 눈길을 해외사업으로 돌렸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C건설사 대표이사는 이와 관련해 "주택사업이 한계에 달했다는 판단은 4~5년전부터 했고, 이에 대비해 토목사업 등 공공사업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시도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번 구조조정에 불안하기는 워크아웃 건설사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초 금융계가 단행한 1·2차 신용위험평가 발표로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돼 몸집줄이기를 시도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섰다고 자평해온 이들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권에서 워크아웃 건설사 이름도 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고 이어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모기업이거나 자화사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우종합건설은 재무 악화로 모회사인 현대시멘트마저 무너지게 만들었다.

산업계 전반에서 부실한 모기업이나 자회사를 끌어안아 동반부실로 추락하기보다는 떼어내는 것이 낫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건설업체는 최근 모기업이나 자회사로부터도 찬밥신세가 되기 일쑤다.

종합건설회사의 구조조정은 전문건설업체에도 치명적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이달 초 청와대 등 정부부처에 긴급 건의서를 냈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중인 건설업계 구조조정으로 종합건설업체가 퇴출될 경우 전문건설업계도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구조조정을 최소화 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건의서에서 현재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시공순위 100위권 내 9개 업체가 구조조정될 경우 하도급업체 3213개사가 9396억3400만원의 피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1개 건설사당 381개 협력업체가 1115억700만원 규모의 피해를 입는다는 분석이다.  

중견건설사 한 홍보임원은 "이번주부터 신용위험평가 결과가 통보될 예정으로 안다"며 "마치 천국행 티켓을 받느냐, 지옥행 티켓을 받느냐 하는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js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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