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포커스] '저가 브랜드' 얕보지 마라

(아주경제 이정은 기자) 저가공세에 직면한 기업은 고민에 빠진다. 기존의 가격정책을 고수할지, 덩달아 가격을 낮출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미엄' 이미지로 한껏 콧대를 세웠던 기업이 돌연 가격정책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수십년 동안 가꿔온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통적인 경쟁 상대가 아닌 신생 저가 브랜드의 등장은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저가 브랜드는 더 이상 '싼 게 비지떡'이라며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나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대만계 미국 TV 메이커 비지오 등이 대표적이다.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는 유럽시장 진입에 성공했고 화웨이는 전 세계 유ㆍ무선 통신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LCD TV 부문에서 역량을 발휘한 비지오 역시 5년만에 북미 대형 TV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입지를 굳혔다.
 
이들이 단기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저가 브랜드로 인식돼 업계 주도세력의 견제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가 내는 맥킨지쿼털리는 최신호에서 기업들이 저가 브랜드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자기만족과 오만 때문이라며 저가 공세에 늦게 대응하다가는 업계 내 지위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가 브랜드는 보통 업계 터줏대감들이 눈여겨 보지 않았던 틈새시장을 먼저 공략한다. 기존 업체들은 시장 점유율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저가 브랜드가 발을 들여놓지 못한 핵심 부문을 중심으로 완만한 성장세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킨지는 기업들이 '거짓 안도감(false sense of security)'에 빠져 있는 사이 저가 브랜드가 기존 시장의 질서를 재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유럽 항공시장에서는 유럽연합(EU)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말 여행이나 통근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대형 항공사들이 대서양과 대륙을 오가는 사이 새 수요에 집중한 라이언에어는 대표적인 유럽 저가 항공사로 고속 성장할 수 있었다.

저가 브랜드는 프리미엄 브랜드와의 격차를 단기간에 극복하기 위해 모방전략을 쓰기도 한다. 제품 디자인은 물론 색상, 모델명, 심지어 홍보 물품까지 베끼는 경우도 다반사다. 모방전략을 쓰는 저가 브랜드는 오리지널 브랜드를 갖고 싶어 하는 소비자나 프리미엄 제품의 노하우를 익히고자 하는 납품업체의 지원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가 업체 사이에 불붙은 경쟁도 기존 시장 판세에 충격을 줄 수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가격전쟁에서 패배한 '루저' 기업들이다. 가격전쟁에서 승리한 기업들은 기존 정책을 고수하지만 루저들은 가격을 낮은 수준에 묶어 둔 채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며 절치부심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저가시장과 프리미엄시장의 경계가 허물어져 기존 업체들도 전략의 수정을 강요받게 된다.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지는 격이다.

라이언에어와 이지제트가 맞붙었을 때도 같은 상황이 전개됐다. 승자는 물론 저가 항공사로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던 라이언에어였다. 하지만 전통적인 저가항공시장 진입에 실패한 이지제트는 곧 기내와 공항에서 고객들에게 풀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통상적인 가격에 풀서비스를 제공해온 대형 항공사들은 가격을 낮추라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고전하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저가 공세에 대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품질이 월등한 만큼 승산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은 곧 평준화되게 마련이다. 맥킨지는 소비자들이 일류 브랜드 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품질뿐 아니라 사후 서비스 지원을 포함하는 '토털 솔루션'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중국에서 저가 공세를 극복해 낸 노키아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토로라와 노키아는 2002년 중국 휴대폰시장에서 업게 1ㆍ2위를 다투며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8개월 후 이들의 점유율은 35%로 떨어졌다. 중국 휴대폰업체인 닝보버드와 TCL이 전체 시장의 40% 이상을 빨아들인 것이다. 급성장의 비결은 물론 저가 공세였다.

그러나 노키아는 빠르게 반격했다. 2005년 중국 소비자들만 노린 다양한 저가 모델을 출시한 것이다. 또 주요 도시가 아닌 외곽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던 지역 경쟁자들과 맞서기 위해 노키아는 유통 구조를 전면 개편했다. 그동안 주력해온 10개 주요 도시의 유통망 가운데 일부와 관계를 끊고 40여개 지역 유통업체와 새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유통망 개편과 함께 1000명이 넘는 영업사원도 새로 채용했다.

노키아는 9만여개의 판매처와 1000곳에 달하는 고객서비스센터를 적극 활용한 결과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35%의 점유율을 차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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