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웃음을 웃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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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7-0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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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공부, 공부 좀 억지로 시키지마!”

급기야 이렇게 소리치고 말았다. 아내가 눈을 활짝 열었다.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애도 깜짝 놀라서 내 눈치를 흘끔 봤다. 순간 울먹거릴 듯한 표정. 초딩 4학년 짜리 아이는 어린 시절 나처럼 겁이 많다. ‘아이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선 내처 질러야지 수그러 들면 안된다. 괜히 쭈뼛거렸다간 본전도 못 뽑고 평화로운 가정에 분란을 일으킨 ‘너만 잘난 놈’으로 몰려 어머니한테 손찌검을 당할 수 도 있다. 짝짝 달라붙는 어머니의 넓은 손바닥에 등짝을 얻어 맞으면 잠깐이지만 자존심마저 상한다. 어머니의 기가 아직도 승하신 때문이다. 거기다 “내가 나가까 니가 나갈래” 소리까지 들으면 나는 자존심이고 뭐고 완전 끝이다.

진땀이 흘러 내렸다. 일단 방문을 닫아 걸고 목소리 톤을 약간 낮췄다. “아니~ 왜 그렇게 아침부터 참고서 문제집만 풀어 제끼냐고?” “야! 너는 이런 공부 재밌어? 엄마가 무서워서 억지로 하는 거 아냐?” 연달아 퍼부었다. 아내는 ‘하 참, 난 또 무슨 소리라고’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얼른 돌아가고, 아이는 “아니? 약간 재밌는데?” 그런다. 여기서도 연타를 날려야 한다. 주춤거리면 “뭘 안다고 그래? 얼른 나가. 얘 오늘 시험이야, 전체적으로 훓어 보는 거야” 이런 소리가 날아오게 되어 있다. 아이도 덩달아 “아빠는 뭘 알지도 못하면서 큰소리만 쳐?” 이렇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짜증 내는 척을 하게 되어 있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나서 나는 계속 지껄였다. “아니, 아침부터 무슨 문제집을 푼다고 난리야. 공부를 이렇게 강요식으로 해서 되는거야? 그리고 이런 문제 풀이 내용이 나중에 커서 무슨 소용이 있는데?” 아내는 야근으로 지친 몸에 일찍 일어난 탓인지 대꾸도 귀찮다는 듯 멍하니 바라봤다.

나는 소란으로 번지지 않은 데 안도하며 즉각 비굴 모드로 돌아섰다. “아니 그렇잖아, 이건 너무 하잖아, 아침부터...그리고....” 몇마디 더하고 마무리를 하려는데, 아내가 무심하게 툭 내뱉았다. “그래, 맞다. 당신 말이 맞아. 후~”

“잉?” 나는 까무라칠 듯 놀랐다. 동시에 머리가 띵해지면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후드득 스쳐가는 불안감. ‘너 잘난 거 아니까 나는 너 한테 안되겠네. 우리 이만...’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갑자기 딸꾹질이 터져 나왔다.

아내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래...맞아, 더 이상 이렇게 공부시켜서는 안되겠어. 나도 그냥 불안해서 습관적으로 이렇게 되는 거야. 애한테 억지로 시키는 공부는 안하느니만 못해. 우리 뭔가 변화를 모색하자. 어떻게 할 지 안을 만들어 봐”

세상에...이게 어디서 흘러나오는 성경말씀이지? 이런 말이 아내 입에서 흘러 나오다니, 나는 귀를 의심했다. 실제로 손가락으로 귀지를 파내고 아내에게 다시 한번 말해달라는 제스춰를 취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내는 본척 만척 아이를 재촉했다. “학교 가자, 자 빨리 가서 씼어라. 스쿨버스 시간 다 됐어” 아이도 뭔가 이상한 표정이었다. 약간 불안감이 스쳤지만 엄마의 말이 워낙 선선해서 그런지 “그래. 알겠어!” 훌훌 털고 일어선다.

나는 아내의 눈치를 슬쩍 살피면서 세면대로 향하는 아이에게 한마디 했다. “야, 빵점 맞아 와도 아빠는 좋아. 괜찮아, 부담없이 시험봐. 알겠지?”

아이 역시 엄마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혀를 낼름 내민다. 말은 좋은 말이지만 아직은 못믿겠다는 눈치다.

아이가 집을 나서자 아내는 나를 불러 앉혔다. 아연 긴장했지만 나는 고분고분 아내 말에 따랐다. 아내가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10년 애 교육 계획을 짜보자. 대학은 어디 보낼거며, 어떤 일을 시켜야 할지. 맞춤형 교육을 시켜 보자”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아내의 사려 깊음에 감동해서 말이 차마 안 나왔다. 애 교육에 무심무능한 남편의 느닷없는 아침 큰소리에 아랑곳 않고 해당 이슈만을 착, 챙겨서 정리해내는 그녀의 쿨한 태도. 나는 하마터면 울컥해서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내가 묘한 표정을 짓자 아내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우리도 빨리 출근하자. 늦겠다” 하며 벌떡 일어 섰다. 나는 아내를 잠시 올려보다 빨리 씻으라는 잔소리를 한마디 듣고 나서야 부랴부랴 출근의 몰골을 갖추고는 졸래졸래 아내를 따라 출근길에 나섰다. 아파트 현관 밖으로 한 발 나서자 태어나서 이보다 상쾌한 아침은 없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공기가 시원했고 시야도 너무 맑았다. 기분이 업 됐다. 나는 우산을 챙겨 나오면서도 “아~ 날씨 좋다” 이런 한심한 멘트를 날렸다. 아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힐끗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웃는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나의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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