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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열전/ 아주경제신문 박정규·박찬흥·이하늘 지음/ 무한
(아주경제 박성대 기자) "코리아는 잘 몰라도 삼성은 잘 알아요." 외국생활을 한동안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듣는 말이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1938년 대구에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후 72년은 '세계 속의 삼성'으로 자리매김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런 유명세만큼 삼성은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이 클수록 삼성을 바라보는 국·내외의 시선은 크게 엇갈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고희(古稀)를 넘긴 삼성의 향후 10년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지금이 향후 10년을 위해 과거 72년을 뒤돌아볼 시점이다.
대기업 취재로 잔뼈가 굵은 경제신문 편집국장 출신 임원, 재계팀장을 지낸 산업부 데스크 그리고 현직 삼성 출입 기자 선후배 3명이 머리를 맞대고 삼성의 발자취를 3대에 나눠 철저히 분석한 '삼성열전' 이 출간돼 눈길을 끌고있다. 저자들은 국내 최대 기업이자 세계 경제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삼성의 과거와 미래를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 이병철 선대 회장-국가와 사회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기업이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엔 존경받는 기업인이 드물다. 최근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의 일화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암은 단순한 축재와 명예를 추구하는 사업가의 범주를 넘어선 경영인이었다. 삼성 초창기 사업이 궤도에 오른 이후 호암은 항상‘사업보국’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업 초기 방만한 생활을 따금하게 잡아준 채현병 선생의 충고와 일제의 수탈 속에서 고통받는 민족을 보며 호암은 먼저 나라를 생각했다. 해방 이후 호암은 대구지역 사업가들과 함께 대구일보를 창간해 언론사업을 펼쳤다. 민생 안정을 위해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삼성물산공사도 창립했다. 전쟁 후에도 그의 경영 철학은 계속됐다. 생필품 무역으로 자본을 확충한 호암은 국가산업 재건을 위해 제일제당을 설립해 제조업에 진출한다. 자칫 실패하면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들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모직 산업에 뛰어든다.
제일모직 제품은 국내 시장 뿐 아니라 해외 수출에도 한 몫을 하며 삼성물산,제일제당과 함께 삼성이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주춧돌 역할을 한다. 제일모직 설립 이후에도 호암은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초대 회장을 맡으며 국내 산업 육성에 힘을 보탰다. 30년을 내다보고 삼성전자와 삼성중공업을 창립했다. 이후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며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국내 1위를 세계 1위로
1987년 12월 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호암아트홀은 1500명에 달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날 46세의 젊은 사업가가 국내 최대 그룹 삼성의 수장으로 추대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2008년 4월 22일 비자금 파문으로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날 때 까지 20여 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본격적으로그룹 경영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삼성그룹 회장직을 맡으며 이 회장은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이 이뤄놓은 경영성과 그 이상의 업적을 남겼다. IMF 위기 속에서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한 주역 가운데 하나가 삼성이다.
저자들은 이 회장의 성격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첫째, 연구가 취미라 불릴 정도로 관심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든 집념.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의 사장급 인사는 “이 전 회장은 사내 엔지니어에 버금갈 정도의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D램 반도체 기술 방식이 스택방식과 트렌치방식으로 양분됐을 당시 이건희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접하고 스택방식을 삼성전자의 기술방식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이는 삼성전자가 향후 20여 년 동안 D램 시장 1위를 달리는 승부처가 됐다.
둘째, 호암을 넘어서는 일에 대한 고집. 삼성의 첫 반도체 사업 진출도 이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반도체 사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삼성의 반도체 진출을 시도하지만 호암은 위험요소가 크다며 이를 미뤘다. 이에 이 회장은 자신의 힘으로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1978년 한국반도체는 삼성반도체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며, 삼성 반도체 산업의 모태가 됐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재용만의 리더십을 찾아라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년 동안 삼성이 빠른게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었다. 호암이 교과서적인 사업을 통해 기초를 다졌다면 이 회장은 창조적인 마인드를 통해 수성, 그 이상의 성과를 냈다. 이들은 당시 처한 상황과 시대에 부합하는 리더십을 통해 삼성을 이끌었다.
두 거목의 뒤를 잇게 될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리더십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2000년 33세의 나이로 경영 실무에 나선 이 부사장은 10년 가까이 크게 내세울만한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증여' 등 경영 승계와 관련한 구설에 오르는 등 부정적인 인식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이 부사장이 삼성의 다음 세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 부사장이 빠르게 성장한 삼성의 위상을 지키는 한편 '이건희의 삼성'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부사장이 경영에서 한발 물러선 소극적인 모습보다는 과거 삼성의 '스타 CEO'들처럼 적극적인 대외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따끔하겠지만 이러한 조언들을 받아들인다면, 책 말미에 저자가 애정어린 마음으로 쓴 '2038년 삼성'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질 것이다.
asrada83@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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